왜 선택하지 않기를 선택할까?

[조직행동 24] 삶에서의 디폴트 (Default)

by witsfinder

유럽 여러 국가의 '장기 기증 동의율'을 비교한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유럽 내에서도 장기 기증 동의율이 국가별로 극적으로 다르게 나타났다. 동의율이 99%에 달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일부 국가는 10% 내외로 현저하게 낮았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들의 가치관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Johnson, E. J., & Goldstein, G. (2003)

원인은 선택 방식에 있었다. 어떤 국가는 기증 의사를 직접 밝혀야 하는 '옵트인(Opt-in)' 방식을, 어떤 국가는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동의율이 Opt-in 방식에서는 낮은 반면, Opt-out 방식에서는 높게 나타났다. 결국 장기 기증에 대한 가치관 차이라기보다는 설계된 선택, 즉 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이 선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결정되는 조건을 디폴트(Default)라고 한다. 디폴트는 개인이 별도의 선택을 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적용되는 상태다. 강제는 아니지만 특정한 결정을 하게 만든다. 조직이나 집단에서는 일정한 행동을 유도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현대인의 삶의 일부가 된 디지털 환경에서도 디폴트는 강하게 작동한다. 수많은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에는 이미 기본적으로 설정된 값이 있다. 개인정보에 관해서도 공개 범위, 알림 수신 여부, 데이터 수집 동의 등은 따로 선택하지 않는 한 대부분 서비스 제공자가 미리 설정해 놓은 기본 설정을 그대로 따른다. 그 결과 생일이나 연락처와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가 공개되기도 한다. 사생활에 관한 중요한 선택조차 이용자가 관성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무엇을 먹을지, 얼마를 저축할지, 어떤 서비스에 가입할지 자신이 판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 부분 디폴트의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은 조직이나 집단 내에서도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기보다는 제공된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디폴트를 따르는 심리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첫째, 인지적 노력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선택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므로 기본 설정을 따름으로써 효율을 추구한다.

둘째, 제도 운영자의 암묵적 권장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기본 설정은 설계자가 권장하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신호로 이해한다. 그 선택을 신뢰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셋째, 손실 회피 심리다. 기본 설정을 변경했다가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예상하지 못한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디폴트는 강요하지 않는다. 선택의 자유를 그대로 두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미리 정해 놓을 뿐이다. 그 조용한 설정이 모여 개인의 행동을 바꾸고, 더 나아가 집단의 방향을 형성하기도 한다.


삶의 경로에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채 따르고 있는 디폴트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상생활의 기본 조건에서부터, 만나는 사람, 생애 진로, 그리고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 참고자료

Johnson, E. J., & Goldstein, G. (2003). Do Defaults Save Lives? Science, 302, 1338–1339.

Gross, R., & Acquisti, A. (2005). Information Revelation and Privacy in Online Social Networks. Workshop on Privacy in the Electronic Society (WPES), 71–80.

Dinner, I., Johnson, E. J., Goldstein, D. G., & Liu, K. (2011). Partitioning Default Effects: Why People Choose Not to Choose.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Applied, 17(4), 332–341.

** 이미지 : AI 활용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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