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 너머의 기억

백두대간 5

by witsfinder

대홍수로 제방이 무너지고 하천이 범람했다. 주인 잃은 소들은 우리를 빠져나와 스스로 탈출했다. 소들은 떼를 지어 이 산 정상에 있는 암자를 향해 올라왔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 있었던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얀 벚꽃이 강변 따라 길게 줄지어 있었다. 셔틀버스는 사람들을 암자까지 쉴 새 없이 실어 날랐다. 동료와 함께 강변부터 걸어서 오르기로 했다. 그 소들처럼,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씩 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해발 540미터 정상.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이 모든 풍경의 배경이 된다. 가까운 곳부터 가장 먼 곳까지 산 능선은 오래된 숨결같이 부드럽게 이어져 있다.


고요하게 흐르는 강은 긴 문장처럼 굽이치며 남쪽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흐르다 멀리 강 건너편 보이는 평사리를 지난다.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곳이다. 발원지에서부터 실어온 많은 이야기들을 그곳에 풀어놓았나 보다.


강 주변으로 들판이 펼쳐져 있다. 반듯하게 나뉜 논과 밭은 오랜 시간 인간이 자연과 함께 일한 흔적이다.


그 가운데 지리산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화엄사, 노고단, 성삼재, 피아골··· 익숙한 이름을 전망대 안내판에서 보고 나서야 그 위치를 가늠해 본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그저 지나칠 만큼 편안한 모습이다.


능선 뒤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이 새싹처럼 돋아 있다. 문득 언젠가 그곳에 가본 적이 있다는 기억도 함께 솟아난다.


어느 해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던 때, 백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그곳에 힘들게 올라갔었다. 산장 앞 바위에 걸터앉아 올려다본 밤하늘과 촘촘하게 박혀있던 별들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후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전망 좋은 이곳까지 안내해 주고 함께 걸어 올라와 준 동료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