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이 끄라통, 너 때문에 즐거웠다
21일부터 시작하는 러이 끄라통을 앞두고, 11월에 접어들자 이미 치앙마이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산티탐 골목도 연일 터트리는 폭죽 소리에 조용함을 잃었고 러이 끄라통이 처음인 나는 누군가 총이라도 쏘는 건 아닌가 한밤중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지나가는 발치에 던져진 폭죽의 굉음에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여러 번.
며칠 전에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가 폼(불을 붙여 띄우는 일종의 연)을 띄우게 됐다. 자주 가는 맹인마사지 안마사들이 폼을 띄우길래 구경하고 있자니 한 명이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그 손끝에 이끌려 함께 폼의 귀퉁이를 잡고 소원을 빌며 폼을 띄워 보냈다. 나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렀고, 그들은 눈이 보이지 않아 서툴러 나와, 그리고 우리의 첫 번째 폼은 전깃줄을 타고 한참을 굴러가 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잔뜩 사고서야 비로소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날 밤, 나의 러이 끄라통이 시작되었다. 내내 러이 끄라통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진짜 러이 끄라통이 시작되었을 때 예상과 달리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치앙마이에 와서 알게 되었던 여행자들과 그들이 알고 지내는 여행자까지 곁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시끌벅적한 러이 끄라통의 첫날을 보냈다.
이틀간 진행되는 러이 끄라통, 첫날의 외출로 봐야 할 건 다 보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기만 하던 치앙마이가 술렁이는 것도 좋았고 퍼레이드도 멋졌으며 끄라통으로 가득 찬 삥강도, 폼으로 밝혀진 하늘도 모두 좋았지만 지쳤던 것도 사실이었다. 11월에 접어들자마자 아침저녁, 심지어 새벽까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뻥뻥 터지는 폭죽의 소음에 설핏 잠이 들다가도 다시 깨어나 불면의 밤을 보낸 것도 여러 차례. 예고 없이 찾아드는 그 엄청난 소음은 어제저녁 내 발치에 떨어진 폭죽의 굉음에 멍해진 귀가 두통까지 유발하게 되자 고통이라 인식되기 시작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러이 끄라통 둘째 날 오후. 나가야 할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도 하루 본 것으로 만족했다며 다시 그 많은 사람과 소음 틈에 끼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듣자 나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치앙마이에 오면서 가장 기대했던 러이 끄라통. 폭죽 소음이 괴롭기는 했지만 집에 있다고 해서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올해가 치앙마이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러이 끄라통일 텐데 집에 있느라 놓친다고 생각하니 아깝다. 오늘도 내일도 계획 없는 치앙마이에서의 삶, 몸살이 나더라도 러이 끄라통은 보고 아프리라 마음먹는다.
외출 준비를 끝낸 내게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도 가겠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혼자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거라면 그러지 말라 하는 내게 자신도 심경의 변화가 있다고 한다. 있는 동안 최대한 누리고 신나는 건 다 해보라 응원해주는 지인에 감화, 피로감 정도는 거뜬히 해소해버렸다는 것이다. 정말 변덕은 팥죽 끓듯 하고, 귀는 종잇장처럼 얇지 않겠냐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화기를 부여잡고 깔깔댄다.
오늘의 러이 끄라통은 오히려 어제보다 한가하다. 사람도 퍼레이드도 어제보다 더 늘어난 것은 틀림없지만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함께 다녀야 할 일행이 있는 것도 아니니 몸이 가볍다. 좀 느긋하게 서서 구경하고 눈보다는 마음에 닿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겠다 기대한다.
앞으로 앞으로, 타패 로드를 걸어 오늘도 삥강 다리에 도착한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여기에도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옆에 떨어지는 폭죽에 놀라는 것을 피하려고 최대한 조심하며 다리를 건넌다. 사람이 몰려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소년들이 벌이는 합주를 구경한다. 그 시끄러운 폭죽 소음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연기도 소년의 설익은 성대가 내놓는 소리에 모두 묻혀버리고 만다. 그것으로 만족하며 자리에 앉아 박수를 보낸다. 잘 들었어요, 고마웠어요.
자리를 옮겨 우리는 강가로 갔다. 제법 뜯어대는 모기와 싸우며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킨다. 평소와 달리 대화는 오가지 않는다. 각자의 이어폰이 내놓는 음악을 들으며 한두 마디 주고받을 뿐이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일까.
한 시간을 넘게 풍경 구경을 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 끄라통을 하나 띄워보기로 한다. 방콕의 짜오프라야강은 러이 끄라통이 지나면 기본 한두 달은 바닥에 가라앉은 초를 걷어내는 작업을 하느라 잠수부들이 바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체 띄워서 가라앉히고, 또 가라앉은 걸 걷어내고. 그런 짓을 왜 하나 싶었는데 막상 날이 다가오니 나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고민 끝에 빵으로 만든 끄라통을 사기로 한다. 삥강 물고기들이 오늘 포식을 하겠지만 가라앉아 쓸모도 없을 바나나잎 끄라통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계산이었다.
친구의 끄라통에 먼저 불을 붙이고 짧은 소원을 빈다. 그리고 나의 차례. 끄라통을 띄울만한 강기슭으로는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자리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고, 덩달아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나는 그 순간 떠오르는 소원 하나만 힘껏 되뇌었다. 아이를 주세요.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던 그 소망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염원했다.
하늘을 가득 채운 폼을 찍은 엽서 한 장을 보고 난 후였나. 꼭 러이 끄라통을 치앙마이에서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오늘 그 바람을 이루었다. 같은 시간 동시에 띄워 올리는 행사는 내가 둘러본 곳에서는 없었기 때문에 엽서 속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별보다 맑게 밤하늘을 비추는 폼과 강을 채운 끄라통, 거대한 퍼레이드는 아름다웠다. 러이 끄라통, 어쩌면 이름도 그렇게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