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아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엄마! 그거 알아?"
"몰라?! 뭔데?!"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그거 2편이 새로 나왔데~~"
"어! 맞아! 엄마도 들었어! 그거 되게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러면, 그거 우리 내일 학교 끝나고 보러 갈까?! 끝나자마자 바로 나올게!"
"잠깐만, 영화 시간을 보니깐 좀 빠듯할 것 같긴 한데.. 알았어! 끝나자마자 바로 나와~"
바쁜 월요일 아침.
학교 갈 채비를 마친 아이들에게 말했다.
"학교 앞에 주차장 있을 테니깐 끝나자마자 무조건 빨리 와야 해!"
크게 대답하고 뛰어가는 두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면서 말했다.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하교 시간이 되자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빗속을 뚫고 우리는 영화관으로 향했다.
운전이 서투른 나는 굵은 빗줄기에 빠르게 돌아가는 와이퍼를 보며, 초조하기 시작했다.
이번 영화 시간을 놓치면 다음 시간은 텀이 너무 길고 저녁이 너무 늦다.
결정적으로 둘째 때문에 더빙판을 봐야 하므로, 최선을 다해 빠르게 운전을 했다.
어찌어찌하여, 우린 상영시간 보다 약간만 늦었다.
다행히 우리가 앉자마자, 영화가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몰입감이 장난 아니었다. 아니 쩔었다!
마블의 팬으로서, 실로 대단한 멀티 유니버스에 눈이 휘둥그레해 졌다.
멀티유니버스를 넘어서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라니 이런 천재들을 봤나?!!!!!!!!
키치함과 신선함 그리고 빠른 스피드가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내가 이 정도인데, 우리 아들은 어떨까? 하고 고개를 돌려 아들을 봤다.
세상에나! 저렇게 집중하는 표정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아들의 귀여운 볼살과 떡하니 벌린 두툼한 입술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을 잡았다!
아들은 지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어딘가에 있다!
분명 머릿속에서 earth-24(영화 속 주인공이 있는 세계) 어딘가에 있다!
생각보다 짧았던 2시 반이 지나고, 싱글벙글한 표정을 하고 아들이 나온다!
너무 재미있지 않았냐는 나의 물음에 아들은 말한다.
"거기서 마일스가 다른 행성으로 간 건 정말 대단한데, 근데 그웬이......"
"아들! 근데 엄마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는데, 중간에 그 사람 누구야?"
"아! 엄마가 1편을 안 봐서 그래! 그거 보면 설명이 돼!"
초6인 아들이 나에게 1편의 줄거리와 함께 영화 전반의 세계관을 설명해 주었다.
대박! 설명 왜 이렇게 잘해?!
아들에게 감동한 나는 신통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몇 년 전에, 그러니까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쯤에, 우리 부부는 망했다.
망한 정도가 아니었다.
몇십억의 빚이 생겼고, 시부모님 한분은 치매에 거동도 못하셨고, 한분은 암이셨다.
그리고 아픈 시부모님이 계신 시댁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했다.
아이들이 어렸지만, 사업문제와 시부모님 돌보느니라 정작 아이들을 제대로 케어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여러 변화에 아들은 예민했다.
그러나 그런 아들의 예민함을 받아줄 여력이 없었다.
정확히는 나 조차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아들에게 자세한 상황 설명을 할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저 따라야 한다는 통보만 했을 뿐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그런데 오늘 영화 설명 해주는 아들을 보니, 대견하면서도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엄마들은 첫째한테 늘 미안하고 첫째가 늘 안쓰럽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이 어떤 느낌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너무 알 것 같다.
시행착오를 너무 겪게 해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아들아!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너는 존재만으로도 존귀하다! 너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