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사는 암 수술 4번을 이겨낸 대단한 의지의 여성이다.
그녀는 10년 전 위암 수술을 시작으로 자궁암 수술을 했고, 작년에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 후로, 급격하게 체력이 안 좋아졌고, 부정맥이 생기고 체중이 늘어났다.
또, 원인 모를 염증이 생겼다.
염증이 생겨 괴사가 일어났는데, 진료를 계속 받아도 항생제와 진통제만 처방받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정여사가 너무 아파하기 시작했다.
방사선과 담당 선생님께서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고,
2주간에 걸쳐서 MRI 비롯한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PET 검사를 한 다음날 병원에서 긴급하게 전화가 왔다.
대장천공이 생긴 것 같으니, 지금 당장 암센터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놀란 건 둘째치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급하게 정여사를 데리고 병원으로 왔다.
언제부터 이랬냐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외래 진료 때부터 계속 아프다고 말했고, 3일 전부터는 끙끙 알았다고 말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그렇다면 지금 아주 적기에 오신 것 같다고 정여사를 달랜다.
놀라고 지친 정여사의 혈관은 주사 바늘 하나 꽂기도 힘들었다.
바늘이 들어갈 때마다 온몸을 떨었다.
그런데, 응급실 분위기가 많이 어수선했다.
응급실에 자주 와본 터라 어수선하고 긴박한 분위기는 익히 알고 있지만, 그런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옆에서 들려오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며칠 후 의료노조 파업이 예정이라고 한다.
그때는 의료노조파업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지 알지도 못했지만,
환자 보호자의 화난 목소리가 너무 커서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파업한다잖아! 병실에 자리 없다고 다른 병원 가라잖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지만, 아픈 엄마를 챙겨야 했기에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되었다.
잠시 후 젊은 대장외과 선생님이 오셔서 천천히,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CT상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 어머니께서 움직이는 걸로 봐서 대장천공이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수치나 PET검사를 보면 확실히 맞는 거 같고, 수술에 바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정여사가 고령이기도 하지만, 고려할 사항이 많다는 것이었다.
부정맥이 있어서 혈액 응고제를 아침에 먹었는데, 생각보다 더 출혈이 있을 수도 있고,
방사선을 치료를 했기에 천공이 생긴 부분만을 잘라서 다시 이어 붙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선생님 생각으로는 3개월간은 장루를 밖으로 빼서 장루 주머니를 차고, 추후에 다시 접합하는 수술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순간 정신이 아찔 했지만, 복막염이나 패혈증이 오지 않은 것 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며, 선생님의 이야기를 꼼꼼히 들었다.
(응급실은 보호자가 1명밖에 있을 수 없어서, 다른 가족에게도 전달해야 했기에...)
그동안의 수술들은 최대한 개복을 하지 않기 위해 로봇 수술, 복강경 수술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늦지 않고 바로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의료파업으로 수술을 바로 못 들어갈 수도 있고, 그럴 경우 입원실이 없어서 응급실에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응급실에서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뉴스에서나 듣던 의료파업을 환자의 가족이 되어 겪어보니, 미칠 것만 같았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 급박함을 전하고, 응급실 간호사님들께 계속 상황을 물었다.
그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황의 응급함 때문에, 응급수술이 결정되었다.
잠시 후, 정여사는 수술대에 올랐다. 무려 다섯 번째 수술이다.
나는 수술실 앞에서 정여사와 헤어졌다.
정여사를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한다.
우리가 밖에 있을 테니, 금방 다녀오시라고 말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정여사는 알았다고 손을 올려 나지막이 흔들어 주었다.
그 뒤로, 수술실 문이 닫힌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