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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둑계의 삼대장 보리굴비

보리굴비로 사랑을 느끼는 여자

시작은 이랬다. 친정에 무언가를 가지러 가야 했다. 밤늦은 시간 정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내일 이반장님 밭에 가시나요? 나 뭐 가지러 가야 하는데, 밭에 가시면 점심도 같이 먹고, 내가 친히 데려다 드리리다~~"

"내일 밭에 가긴 가는데, 엄마도 아빠랑 같이 가! 할 일이 많아!"

"정말? 엄마도 간다고 괜찮겠어? 엄마 힘들지 않겠어? 그러면 내일 오후 늦게 가서 저녁을 일찍 먹고 오자~"

"아우~ 야 뭘 저녁을 먹어~ 돈 쓰지 마~!"

"아웅! 내일 밭에 가면 힘들 텐데 저녁 해 먹을 힘이 어디 있어~ 그냥 맛있는 거 함께 드셔~"


안 와도 된다고는 하지만, 내심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메뉴를 고민하는데, 남편이 친구에게 추천받은 보리굴비를 소개해 주었다.

위치가 좋아서 서울에서도 많이 오는 곳이고, 특히 저녁은 예약을 필수로 해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예약 필수라는 말에, 맛집의 포스가 느껴졌다


다음날 늦은 오후, 엄마와 아빠 계신 밭으로 향했다. 멀리서 보니, 노부부가 다정하게 밭이랑에 농사용 멀칭비닐을 깔고 있는 것이 보였다. 때마침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정여사를 크게 불렀다.

"엄~~~ 마~~~~~~"

크게 웃어 보이는 정여사는 벌써 왔냐면서도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 반장님은 말없이 비닐 작업을 마무리하신다. 빠르게, 부모님을 태우고, 나만의 약속 장소인 보리굴비 집으로 출발했다.

도로에서 안쪽으로 굽이굽이 들어가니, 맛집 끝판왕 같은 큼지막한 간판과 3층짜리 외관이 맛집의 위용을 드러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예약했음을 알리고,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보리굴비 짝꿍이 커다란 대접에 국자와 함께 나왔다. 녹차물 대접에서 얼음이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가 벌써부터 식욕을 자극했다. 녹차물이 나오자마자, 대략 20여 가지의 반찬이 세팅되기 시작하더니, 가운데 큰 접시에 뼈가 잘 발라진 갈색 속살의 보리굴비가 나왔다.


우선, 보리가 섞인 쌀밥을 녹찻물에 말았다. 물에 만  밥 한 숟가락을 뜨고, 그 위에 굴비를 얹어서 입안 가득 씹었다. 살이 녹진녹진한 굴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굴비의 살짝 비린맛을 녹차물이 다 씻겨내어서 입안 가득 굴비의 풍미와 씹을수록 달큼해지는 보리밥이 조화를 이루었다.


보리굴비를 집에서 쪄본 사람이면, 이 비린내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 말린 굴비를 쌀뜨물에 담갔다가, 쪄낼 때는 바닥에 청주를 뿌려서 잡내를 없애려 노력해야 하고, 살이 꾸덕하지 않고, 부드럽게 먹을 수 있정도의 증기를 알맞게 조절해야 한다. 게다가 제대로 쪄내지 않으면 나중에 뼈와 내장이 잘 발라지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세밀하게 쪄내야 한다. 그래서 숙련공이 아닌 이상 엄두도 못 내는 일이다.


어쨌거나, 놀라운 첫 숟가락을 뜨고, 같이 나온 나물 반찬을 먹었다. 데친 쪽파무침, 도라지 무침, 가오리무침, 시래기, 청포묵무침 등등 하나같이 밥도둑을 빛내주는 조연 같은 맛이었다. 새콤한 무침은 식욕을 돋우고, 슴슴한 무침은 굴비 맛을 중화시켜주고, 달달한 무침은 굴비와 조화를 이루었다.


굴비를 세 번째 뜨는 숟가락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정여사와 이반장님이 드시는 것을 쳐다보았다. 이 반장님은 아무 말도 없이 놀라운 속도로 굴비를 흡입하고 계셨고, 정여사 님은 찬찬히 굴비에 녹진한 맛을 음미하고 계셨다. 나는 접시에 계속 굴비 살을 발라 올려두었다. 두 분 다 한사코 너무 배부르다며 다 못 먹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계속 밥 위에 올리고, 접시에 올리고를 반복했다. 더 이상 못 먹겠다는 이반장님의 그릇에 녹차물을 부으며, 그것만 더 드시라고 했다. 그만 그만을 외치던 이 반장님은 알겠다며, 마지막 남은 굴비 도막을 가져갔다.


잠시 이반장님을 신경 쓰는 사이, 정여사가 계산서를 몰래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가고 있었다. 나는 숟가락을 냅다 던지고 일어나서 계산서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카드와 함께 던지듯이 계산서를 카운터에 내밀었다.

오늘도 서로 내려는 사람들로 실랑이가 일어났다.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가게 직원은 내 카드를 받아 들었고, 카드승인소리가 나의 승리를 알렸다.


두부부는 연신 너무 잘 먹었다와 배부르다를 외쳤다. 나는 그 소리가 고맙다는 애정 어린 표현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오늘도 너무 잘 먹었다는 소리로 소소한 우리만의 저녁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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