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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이냐 양념게장이냐 고민할 시간에 하나 더

남편과 거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 오늘 문자 받았는데, 우리 옛날에 가던 그 식당 세일하나 보네~ 거기 진짜 간장 게장 너무 맛있었는데..."


갑자기 철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더니, 쿵쿵쿵 타다닥! 아들이 뛰쳐나와 말했다.

"아빠! 나 거기 너무 가고 싶어! 간장게장 먹으려고, 누나랑 용돈도 모았어"

"엥? 누나랑? 언제부터?"

"지난번부터 너무 가고 싶었어!!"

친척누나와 함께 모았다며, 발그레한 빨간 볼이 아들을 닮은 돼지 저금통을 내민다.

쨍그랑 촤르르~ 쏟아지는 저금통을 보니, 딱 봐도 만원 언저리다. 반짝이는 동전을 보니, 먹고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띠링! 다음날 남편에게서 카톡하나가 날아왔다.

'줄 서서 먹는 맛집! 000 간장게장'

먹고 싶어서 돈을 모았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근처에 있는 맛집을 검색했으니, 당장 오늘 가자고 한다.

잠시 후! 띠링 하고 문자 한 줄이 더 날아왔다.

"장모님도 간장게장 좋아하시니까 같이 모시고 가자!"


그렇게 갑자기 간장게장 모임 결성이 되었다. 아들을 픽업해서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게장집에 도착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맛집 포스가 느껴지는 맛집이었다. 인적 드문 도로 한쪽에 자리한 식당은 허름한 외관과, 시뻘건 빨간색 간판이 네온사인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TV 맛집으로 소개 되었다는 홍보입간판이 노포맛집임을 느끼게 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무한리필 세트를 인원수 대로 주문했다. 두 테이블로 나누어 앉았다.

제일 먼저, 오늘의 메인 간장게장이 눈에 들어온다. 큰 접시 한가득한 간장게장을 보는 것 만으로 츄르릅 침이 고였다. 등딱지와 분리되어, 간장을 머금고 있는 투명한 속살 위에, 파릇파릇한 쪽파 토핑이 인상적이다.

맛있게 먹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비닐장갑에 바람을 후~ 하고 불어넣고, 내 손에 맞게 끼운다. 활처럼 휜 검은 가위를 들고, 가운데를 기준으로 열십자 모양으로 4 등분한다. 한입에 들어가기 좋게 하기 위함이다. 앞발을 들고 한입 가득 게를 베어문다.  오도독 밀려 나오는 게살을 더 깊숙이 느끼기 위해 스읍스읍 강하게 게장을 빨아드린다. 비린내가 전혀 느끼지 않는 신선한 게장의 맛이다. 짠맛도 느껴지지 않아 게 한 마리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고개를 돌려 등딱지를 집어든다. 모락모락 김이나는 하이얀 쌀밥을 크게 떠서 등딱지 안으로 밀어 넣어 비빈다. 함께 나온 노란 날치알을 살짝 뿌려, 슥슥 비빈다. 밥이 으깨지지 않도록 얼기설기 섞은 후, 밥알이 떨어지지 않도록 마른김 이불로 돌돌 말아 입안에 넣는다.


작은 눈이 놀란 토끼처럼 커지는 순간 고개를 들고 남편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남편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게장에 집중하느라 아들과 부모님이 잘 드시고 있는지 살피지 못했다. 역시 게장의 맛은 본능에 가깝다. 아들은 게장살을 손으로 쭉쭉 짜내어 밥그릇에 넣고 비비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동그란 날치알 그릇을 밥 위에 후드득 털어주었다.


반사적으로 손이 게장 위로 올라가던 찰나, 옆에 놓인 빨갛다 못해 시큼한 양념게장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가위로 잘라 입안 가득 베어 물었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매콤한 양념과 달콤한 양념이 거문고 줄 튕기듯이 왔다 갔다 진동하는 맛이다. 나는 연신 '어머머' 외쳤다. 매운 양념게장이 더욱 매워져 불이 날 것 같아, 급하게 쌀밥 한 숟가락으로 혀를 진정시키고, 같이 나온 꽃게탕 두부를 건저 입안에 걸쳐 놓았다.

꽃게가 신선해서 그런지 양념게장 또한 비리지도 않고, 맛있게 매웠다.


빨간 양념을 쪽쪽 빨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신기한 듯 나와 아들을 번갈아 보면서 말씀하셨다.

"너네는 그게 그렇게 맛있냐! 진짜 네 아들 맞다! 둘이 똑같이 그렇게 잘 먹네~"

엄마가 간장게장을 아들밥그릇에 살포시 얹어주셨다. 말 안 해도 그 손길에 애정이 묻어있다. 

아들과 나는 서로 눈을 찡긋하고, 다시 게장에 집중했다. 이번에는 함께 나온 꽃게탕에 간장게장을 넣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꽃게탕에 거품을 걷어내고, 잘 익은 꽃게를 먹었다. 푹 익은 꽃게가 간장게장과 다르게 잘근잘근 부드럽게 씹혔다.

'아~ 그래서 후기에 꽃게탕만 먹으러 또 가고 싶다고 했구나 '를 되뇌었다.

처음에는 심심했던 꽃게탕이 간장게장을 넣고 끓이니, 간이 이리도 잘 맞을 수가 없었다. 뜨거운 꽃게탕 국물을 먹으니, 또르륵 땀이 흘러내렸다.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두 번째 접시마저 클리어한 우리는 드디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게장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옆에서 누군가 말했다.


"간장게장이 맛있어? 양념게장이 맛있어?"

"아~ 그건 질문이 잘 못 된 것 같아! 둘 다 너무 신선하고 너무 다른 매력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가 없어! 그건 호불호의 문제도 아닌 거 같아! 고민할 시간에 한 개 더 먹는 게 게장에 대한 예의 일 것 같아!"


나오면서 흐뭇해하시는 부모님의 표정과 만족한 듯한 아들의 표정을 보니,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했던 일상에 간장게장 외식이 특별한 저녁을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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