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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전생에 엄마 며느리였을지도 몰라

상차림에 늘 진심인 여자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친정부모님은 외식을 싫어하신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외식을 하면 빨리 먹고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편안히 먹기를 원하신다. 집에서 먹으면 편안하고, 아이들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좋지만, 식구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열심히 하기로 한다.


모임상의 요리는 늘 비슷하다.

정여사(엄마의 애칭)가 우주 세계최고로 잘하는 낚지 볶음과 도토리묵무침.

 - 이 요리는 아무리 내가 해도 그 맛이 안 나기 때문에 정여사의 손을 빌리기로 한다.

내가 잘하는 크래미, 오징어 파전, 알탕.

정여사 밭에서 캐 온 두릅, 미나리, 열무로 무친 무침들.

메인 요리가 바뀌는 편인데, 이번에 메인 요리는 한우 등심구이 with 아스파라거스.

우리 집 잔치상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 굴비.


식구가 많다 보니, 한 번에 상을 4개씩 차린다.

이때, 정여사의 식기들이 어마무사하게 나온다. 그중에는 50년 전 정여사가 시집올 때 준비한 혼수 그릇도 있다. 국그릇, 밥그릇, 반찬 접시들 그리고 후식으로 나오는 다과 접시들까지 그 많은 그릇이 집에 있는 것도 요즘 같은 세상엔 신기한 일이다. 우리에겐 소소한 일상이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다 모이고, 정신없이 반찬을 담고, 밥을 푸고 있는데, 옆에서 정여사가 나지막이 읊조린다.

"이렇게 사람들이 북적북적해야 사는 거 같지!"

그렇다. 정여사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뜨끈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에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다.


어느덧 상차림이 완성이 되고, 되도록 따뜻한 고기를 제공하고 싶어서, 어른들 먼저 드시라고 하고, 마지막까지 고기를 굽고 있었다.

마치 그 장면이 어느 시댁에 갓 시집온 며느리가, 손님상 대접하느니라 밥도 못 먹고 땀을 흘리는 모습 같았다. 시어른들 먼저, 아이들 먼저 챙기느라, 며느리 본인이 밥 먹을 시점에는 상을 치워야 하는 혼란한 장면이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내가 전생에 정여사의 며느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포인트가 있다. 내가 전생의 엄마 며느리였다면,  다시 태어나도 엄마 며느리가 되고 싶다는 점이다. 나 스스로 엄마와 가족들을 위해 맛있는 뜨끈한 음식을 만들어서 내어주고, 그들이 맛있다고 해주면 세상 행복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고, 가족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고 늘 응원하는 마음이 든다.  나는 정여사를 닮아서  그런 걸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기 때문인 듯하다.


옛날부터 밥심으로 산다고 했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는 뜻인데, 나는 밥정으로 산다고 말하고 싶다. 같이 밥을 먹으며 정도 들고, 밥으로 위로받고, 밥으로 응원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힘내라는 말뿐인 공허한 위로보다는, 말하지 않고 든든히 먹으라고 많이 먹으라고 하는 위로가 더 의미 있고, 울림이 크다. 먹다 보면 기운도 나고, 나를 위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든든해지기도 하고, 다시 먹고 싶은 생각에 살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상차림에 진심인 이유는, 아마도 내 요리들이 내가 가족에게 보내는 든든한 응원과 위로 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진짜 전생에 엄마 며느리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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