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 전문가인 여자
이반장(친정아버지의 애칭)님께서 팔순을 맞으셨다.
우리는 팔순만큼은 지나칠 수 없었다.
이반장님은 시끌벅적하고, 친인척들 모두 오는 잔치를 싫어하신다.
고작 생일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이반장님의 성향과는 반대되는 일이다.
내향형인 이반장님은 그저 우리 가족이 오붓하게 지내기를 바라셨고, 그 모임도 가족들이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하셨다.
(내향형인 이반장님에게 극 외향형인 막내딸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다.)
어찌 됐건 이반장님 인생에 중요한 이벤트인 만큼 집안 대소사 잔치 전문가인 내가 나설 차례였다.
이번 아버지 팔순에는 다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생신은 6월이지만, 여름휴가와 방학 일정 이용해야 해서, 실제 여행은 8월에 떠난다.
(여행에 관한 에피소드는 차후 다룰 예정이다.)
우리는 이반장님 생일 당일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원하는 장소는 대충 이런 특징을 가진 곳이어야 했다.
조용하고, 우리만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부페처럼 왔다갔다 하지 않고,
코스요리가 아닌 한 번에 차려지는 음식이 여야 하고,
맛있어야 하며, 집 근처여야 했다.
이런 조건에 맞는 장소는 실제로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집단 지성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머리를 맞대며, 검색을 시작했고, 계속된 논의 끝에 우리의 욕구를 다 충족하는 장소를 찾아냈다.
블로그와 인스타를 보며, 사람들의 후기를 찬찬히 보니, 음식은 꽤 정갈하게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보기에 정갈해 보이는 것과 실제로 먹을 때 정갈한 맛이 느껴지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나는 잔치 준비단으로서 해당 음식점에 시찰을 나갔다.
물론, 팔순잔치 준비를 가장한 사심이 가득한 결정이었다.
일부러, 가장 바쁜 시간으로 예약을 했다.
바쁘다고 대충 하는 곳이라면, 가족들이 실망할 수 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보이는 고즈넉한 항아리와 소나무가 눈에 띄었다.
작은 연못과 다리도 있어서 아이들도 좋아할 듯했다.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데, 남자 직원분께서 큰 카트를 밀고 오셨다.
그렇다. 반찬을 일일이 가지고 와서 우리 식탁에 내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큰 상을 카트 째로 들고 와서, 우리 상에 끼우는 방식이었다.
푸짐한 상차림이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나물 반찬, 전, 생선, 그리고 된장찌개까지 부모님께서 좋아하실만한 상차림이었다. 시찰단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나는 천천히 열심히 차곡차곡 먹었다.
새콤한 샐러드와 냉채는 입맛을 돋우고,
부드러운 전과 생선은 간이 잘 맞아 부드럽고,
다양한 나물 반찬은 밥과 잘 어울렸고,
촉촉한 수육은 든든히 속을 채워주고,
마지막으로 된장찌개가 느끼한 속을 잡아주었다.
점심 특선은 대 만족이었고, 카운터로 가서 주말 가족 모임을 예약하고 싶다고 했다.
인원수, 날짜, 시간, 메뉴 구성을 조율하고, 예약금을 걸었다.
사장님께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 사장님께서 호박 식혜를 내어주셨다.
집에서 만든 식혜라고 하시며, 꼭 먹어보라고 하셨고, 잘 준비하고 있겠다고 하셨다.
오랫동안 장시하신 사장님의 자긍심이 느껴졌다.
덕분에 꽤 괜찮은 팔순 잔치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