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의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된 여자
올 1월의 일이었다. 6월이면 이반장(친정아버지의 애칭)님께서 탄생 80주년이 되는 달이였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자매들은 팔순만큼은 그냥 지나치지 말기로 다짐했었다. 80이라는 나이가 주는 의미도 크고, 온전히 우리 가족만의 시간을 만들어 보자고 뜻을 모았다. 그러다가 가족 첫 해외여행을 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동안 계속 추진 했으나, 코로나와 엄마의 수술이라는 변수가 생겨 갈 수 없었다. 또, 국내여행은 짧게 가봤지만, 사는 것이 바쁘고 각자의 가족들을 챙기다 보니, 장기간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가 아니면 언제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쉽지 않더라도 해보기로 했다.
해외여행을 결정하고 이번에는 어느 나라로 가고 싶은지를 정해야 했다. 누구는 일본을 가고 싶어 했고, 누구는 유적지나 사원이 많은 태국을 가자고 했다. 나와 남편은 보라카이가 가고 싶었다. 우리만의 추억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바다와 해변,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체험할 수 있고, 무엇보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곳이기에, 가이드가 없어도 우리만의 자유여행이 가능곳이였다.
우리가 처음 보라카이를 방문한 것은 17년 전이였다. 그때는 사람들이 보라카이를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첫 결혼기념일을 맞아 그곳을 찾았다. 보라카이는 7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의 작은 섬 중의 하나이며,
팔라완, 보홀과 함께 세계 3대 화이트 비치로 불리는 섬이다. 한국의 제주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곱디고운 하얀 모래가 해안가에 끝없이 펼쳐져 있고, 파란 하늘과 투명한 윤슬이 일렁이는 바다가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다. (보트를 타고 해지는 석양을 바라다보면, 옆에 있는 남편에서 절로 뽀뽀를 하고 싶어 진다. ) 그 바다 때문에 보라카이앓이가 심해져 다시 찾게 되는 곳이다. 거기에, 그런 바다를 더 잘 느끼게 해 줄 수많은 액티비티(activity-호핑, 선셋 세일링, 프리다이빙, 파라 세일링 등등)와 친절하고 호의적인 사람들이 반겨주는 낙원 같은 곳이다.
우리는 가족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보라카이를 가자고 했다. 가는 길은 번잡해도, 가면 정말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언니들은 보라카이에 가면 특별한게 뭐가 있냐고 했다. 나는 계속 액티비티와 바다를 이야기 했지만,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바다에서 노는 것만 있는 곳일 뿐이였다. 남편은 아직 경험 안해봐서 그렇지, 갔다오면 모두가 보라카이 앓이를 할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설득하는 대신 작전의 노선을 변경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지난번 여행에서 남은 필리핀 페소를 나눠주었다. 그리고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드리라고 미션을 주었다. 이번여행을 보라카이로 가고 싶다면, 그건 너희들에게 달려 있으니, 꼭 할머니 할아버지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빳빳한 신권 1000페소 몇 장을 들고 아이들이 이반장(친정아버지의 애칭)님께 건네면서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보라카이 가요~~ 꼭 가고 싶어요~"
함박웃음을 지으시는 이반장님의 얼굴에서 놀라움과 고마움이 느껴졌다. 손주들이 함께 가서 쓰자며 드린 용돈을 계속해서 만져보셨다.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같이 가보자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여행지는 보라카이로 결정되었다. 모든 계획과 일정은 우리 부부가 맡기로 했다. 특히나 파워J형인 남편이 주도했다.
처음에 모든 친정 식구들이 물놀이는 싫다고 했고, 위험한 것도 별로라고 했고, 본인들은 리조트에만 있다가 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와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 한번 가 보면 바닷가에만 앉아 있어도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주 기획자인 남편이 가입한 보라카이 여행 카페는 7개가 넘었다. 어떤 카페의 상품 패키지 구성이 좋은지, 어떤 카페와 하면 마사지를 저렴하게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현지 식당 할인권을 받을 수 있는 카페도 있었고, 여행 기념품도 싸게 살 수 있으며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카페도 있었다. 지난 수년간 보라카이 여행으로 다녀진 내공과 노하우가 있어 비교 분석이 가능했다.
여행지가 결정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다. 먼저, 팔순준비전용 카톡 공지방을 만들고, 모두가 휴가를 낼 수 있는 날짜를 조율했다. 남편은 최소 일주일은 가야 한다고 했다. 보라카이로 가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오는 날과 가는 날은 빼면 실제로 여행하는 날은 며칠이 안된다. 모두가 휴가를 낼 수 있는 날짜로 여름휴가와 방학이 있는 주간에 일주일을 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경 쓴 것은 리조트였다. 번잡하지 않으면서, 전용해변(보라카이는 화이트 비치라고 해서 약 3km 가량의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모래사장을 스테이션 1,2,3 으로 나누는데, 리조트 앞이 바로 해변으로 연결되어 있어 전용 해변을 쓸 수 있는 곳은 주로 스테이션 1쪽에 있다.)을 쓸 수 있고, 서비스도 좋으며, 많은 인원을 수용할만한 리조트를 찾아야 했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같은 리조트를 떠올렸다. 그곳이라면 온 가족이 정말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전용 보트가 있어, 우리를 항구로 바로 픽업 올 수 있다는 아주 큰 장점이 있는 곳이다.
남편은 바로 해당 리조트에 메일을 보내서 날짜와 가격을 확인했고, 나는 카톡으로 공지를 띠워 12명의 인적사항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비행기 예약을 진행했다. 비행기는 거의 취소나 변경이 불가능 했다. 원래는 국적기를 선택하고 싶었으나, 국적기는 해당일정에 비행 스케줄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저가 항공을 예약했는데, 저가 항공은 취소나 변경 수수료가 비싸서 취소나 변경이 힘들었다. 비행기와 호텔이라는 큰 축이 정해졌으니, 준비는 반이상 된 셈이다. 세부사항들은 일정에 맞춰 조율하면 된다.
그렇게 불가능할 것 만 같았던, 팔순 원정대가 보라카이로 향하는 첫 원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