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2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이숭이월드 덕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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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 금요일,
“길들인다는 게 뭐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너무 잘 잊혀지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에어콘과 이숭이의 관계. 찜통 같은 여름날에 에어컨은 나를 길들이고 있었다. 내가 잠들 때나, 거실에서 쉬고 있을 때나 항상.. 에어컨 만세 만세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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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간식을 챙겨주고 문 앞에서 파이팅을 외친다.
오늘만 다녀오면 휴가가 시작되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며 하이톤의 목소리로 그를 응원했다. 그리고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요즘 똑같은 패턴으로 지내고 있는 이숭이의 일과. 침대왕구렁이가 될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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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구렁이, 침대 애벌레는 일어나서 빵을 먹었다.
택배를 보낼 물건들을 포장하고 오후에는 커피도 한 잔 내려 마셨다. 선물 받은 드립백으로 달콤하고 고소한 맛을 느꼈다. 밥을 안치기 전에 영어책을 펼치고 이틀 치의 문장을 배웠다. 대량학살, 유대인, 반유대주의 등등 단어가 어려우니 계속 읽으면서 머리에 집어넣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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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밥을 안쳤다.
그리고 전에 사놓은 추어탕을 데우고 후라이 2개를 구웠다. 오징어젓갈이랑 깍두기는 덤으로 차려서 맛있게 먹는 우리. 모처럼 마주 앉아 먹는 집밥은 이다지도 따뜻하고 든든했다. 그동안 불량주부였던 이숭이, 이제 밥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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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휴가 계획은 아직 없다.
강원도로 가고 싶지만 멀어서 접고, 어딘가로 가고 싶은데 그 장소를 못 찾았다. 일단은 시원한 집에서 에어컨을 켜놓고 영화를 보는 것. 아니면 근처 카페에 놀러 가는 것.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확실한 건 읽고 싶은 책들을 몰아서 보는 것. 약속을 최대한 만들지 않고 둘이서 아주 잉여롭고 백수처럼 시간 부자로 지낼 우리.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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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돌리고 커피를 내렸다.
남편이 내린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서 오징어다리랑 포테토칩 과자를 뜯었다. 오늘의 영화는 ‘보안관’. 오랜만에 화면에 빨려 들어가듯 재밌게 봤다. 휴가라서 뭐든 재미있는 우리의 시간들. 오예. 놀자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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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덕숭이 실패작.
모자에 문양이 없는데 물감이 새어 나왔다. 꼭 푸딩 같다.
물놀이 가는 덕숭이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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