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0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_
_
8월 10일 토요일,
새벽 두 시와 오전 열한 시.
남편이랑 너무 대조되는 삶을 보내고 있다. 휴가를 하루씩 까먹을수록 아쉬워하는 남편은 매일매일 새나라의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는 바른생활 사나이였다! 알람 소리에 잘 반응하고 곧바로 일어나 거실로 향한다. 자는 건 아쉬워서 폰을 만지든 목공놀이를 하든 뭔가를 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숭이는 잠숭이. 눈을 떴을 땐 이미... 반나절이 흘러 있었다.
.
목공꿈나무는 초코과자같이 생긴 나무에게 오일을 발랐다.
기름을 먹이니 더 초코초코스러워진 우리집 마그넷들. 나의 그림이, 그의 뚝딱딱이 합쳐진 작품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멍멍이의 멍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금세 미소가 퍼져나간다. 하찮고 작은 것들에 행복을 느끼는 이숭이와 남편. 그나저나 요가꿈나무 마그넷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드디어 요가꿈나무 탈출인가.
.
남편은 커피를 내려줬다.
원두를 갉갉갉 갈아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건네준다. 커피제조기에 이어 얼음제조기까지.. 뭘 하든 정성껏, 차근차근 해내는 사람이었다. 어젯밤 꿈 얘기를 꺼내면서 남편을 붙잡았다. 나의 꿈 빅데이터를 다 조합해서 관심을 끌어들였다. 한 번씩 맞아떨어지는, 그리 흔하지 않지만 신경 쓰이는 상황을 꺼내서 대화를 했다. 그러다 미래 이야기까지 술술술. 새삼 들어주는 귀를 가진 남편을 만나서, 차분하게 들어주고 필요한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서 고마운 마음이 가득했다.
.
오늘 분량의 영어공부를 끝냈다.
방에서 공부를 하고 나오면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그때 시원하게 나오는 에어컨 바람 덕분에 기분 좋아지는 순간을 자주 마주하고 있다. 갑자기 낮잠 타임 시작. 남편은 나무를 자르기 위해 선을 긋고 있는 동안 이숭이는 쇼파를 차지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어김없이 잠에 빠져든다..... 자면 안 되는데..
.
조용히 지나갈 토요일이 될 뻔했는데 약속이 있어서 움직였다. 시부모님이랑 밥 먹으러 가는 날! 서울에 다녀온 후에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겠다며 큰소리 뻥뻥 치고 왔었다. 마침 오늘 시간이 맞춰져서 말복맞이 삼계탕을 먹으러 갔다. 넷이서 각자 뚝배기 한 그릇으로 속을 뜨끈뜨끈하게 채웠다. 오늘 얘기 주제는 페어 후기, 아니 서울 상경기. 감동스럽고 감사한 페어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는, 고생했다며 토닥토닥 격려까지 해주셨다. 복숭아, 포도, 아로니아까지 이제는 과일로 배를 채운다. 아로니아를 처음 먹어봤는데.... 얼굴이 못생겨지는 맛이었다. 약인가?
.
집에 가는 길에 샛길로 빠지는 두 사람.
동촌유원지. 밤에 더 반짝반짝거리고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이 곳에 우리는 야구게임을 하러 간다. 느린 볼, 빠른 볼을 피하고 ‘칠만 한 볼’ 코너에 들어가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총 45번의 휘둘림을 끝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농구공도 던지면서 땀 한 바가지를 흘렸다. 육천 원으로 운동과 재미를 샀다.
.
그대로 집에 갔어야 했는데...
남편이 토스트가 먹고 싶다길래 바로 콜!을 외쳤다. 가고 싶었던 곳은 문을 닫았고 이모토스트에서 토스트, 순대, 납작 만두를 주문했다. 잠깐 소화가 됐다고 다시 음식을 채우는 여백의 미를 모르는 우리. 이숭이는 먹으면서 질질질 흘리는 스타일... 입에 마요네즈 묻히고, 호일까지 뜯어먹는 내 모습에 남편은 빵터졌다. 콜라까지 시원하게 들이키고 다 먹고 나서야 집으로 왔다. 오늘도 이숭이 배꼽은 커졌다...

작가의 이전글20190809 이숭이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