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1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하루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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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일요일,
아... 열 한시에 일어났다.
그것도 남편이 깨워서.. 늦잠을 달고 사는 내가 일요일만큼은 일찍 일어나서 남편처럼 알찬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잠들기 전 내일 일어날 때 나를 깨워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런데.. 남편이 까먹었다. 인생에 예외가 있지만 이숭이의 잠 세계에는 그런 게 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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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잔 시간에 비해 푹 못 자서 그런지 상태가 영 꼬질꼬질하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어푸어푸 세수를 하고 나왔더니 조금은 낯빛이 밝아진 듯하다. 그리고 곧 이숭이의 눈과 얼굴이 반짝반짝거렸다고 하는데.. ‘돈까스 먹으러 갈래?’ 그 한 마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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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4~50분을 달려간 돈까스집.
미군부대에 있는 ‘아메리칸 레스토랑’. 가끔 경양식 돈까스가 먹고 싶을 때 찾아가는 곳이다. 운명적인 타이밍으로 대기 없이 바로 자리에 앉았다. 몇십 년 전부터 똑같은 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은 이 곳에서 ‘키스미 달링 키스미~’ ‘돈 워리 비 해피’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인다. 마치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아메리칸 음식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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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카페로 왔다.
아이스커피 한 잔을 내려서 편하게 영화나 봐야지. 그냥 이끌려서 선택한 ‘아메리칸 셰프’. 미국 여행, 알록달록 쿠바 여행, 쿠바식 샌드위치를 먹어보고 싶게 만든다. 음악, 음식, 색감, 내용이 매력적이라 유쾌하게 봤다. 배가 부른 상태라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보면서 고통스럽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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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셰프 대신 코리안 셰프가 떴다.
우리집에 떴다. 그가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냉장실, 냉동실을 뒤져가면서 냉장고를 털 때쯤 소파를 차지하는 이숭이. 등과 머리가 매트에 닿는 순간 스르르르 잠이 든다. 머리 밑에 있는 고양이 쿠션은 넙데데한 광어가 돼버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쿨쿨 자다가, 코 끝에 음식 향기가 들어오는 순간에 눈을 떴다. 밥 먹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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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표 달걀 볶음밥.
피망 향이 솔솔 나는 볶음밥을 원했지만 재료가 없었다. 집에 있는 재료를 달걀, 양파랑 당근 애호박 팽이버섯 알록달록하게 볶음밥을 만든다. 그 위에 자를 대고 뿌린 듯한 케찹. 이제는 덜 놀랄 때도 됐는데 반듯, 정확한 것들을 보면 늘 신기하다. 오므라이스 맛이 나는 맛있는 밥밥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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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밤부터 잘 먹고 잘 놀았다.
작년 여름휴가는 서울과 첫 강원도 여행이었다면 올해는 집에서 조용히 보내는 게 목표였다. 맛있는 거 먹고 안 움직이고, 집에만 거의 있어야지. 어디 안 다녀야지. 에어컨이랑 친해져야지.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바쁜 듯 여유롭게 나태한 듯 알차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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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휴가가 시작되자마자 다르게 흘러갔다.
남편 친구들이랑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회식하던 날, 둘이서 시내에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날, 동네 카페와 동네빵집에 가던 날, 시원한 집에서 목공놀이를 하는 여유, 늦잠과 낮잠을 일삼던 나태 왕 이숭이, 시부모님과의 식사, 양꼬치 가게로 출석도장 찍기, 동네 산책, 동촌유원지 야구게임, 읽고 싶은 책 꺼내서 읽기, 집에서 내려마시는 커피, 그리고 영화. 시답잖은 농담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우리만의 대화, 귀찮게 남편한테 달라붙는 거머리 이숭이와 정말 부지런하게 알차게 보낸 남편. 잘 놀았다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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