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5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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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일요일,
남편의 잠 못 드는 밤.
내가 찜질팩을 배 위에, 수면안대를 눈 위에 덮어서 스르륵 녹아내렸을 때, 바로 그때 그는 폰을 붙잡고 있었다. 요즘 홀릭 중인 좀비 게임.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좀비를 죽였다. 죽이는 게임인가? 좀비를 키우는 게임인가? 실은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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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났다.
몇 시에 잤는지 궁금해서 얘기를 들어보니, 새벽 4시까지 폰 게임을 했단다. 그러다 현실을 자각한 남편은 ‘좀비 게임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게임을 지워버렸다고 했다. 본인도 푹 빠질까 봐 게임을 안 한다고 했는데, 며칠 사이에 과몰입을 해버린 자신을 보며 겁이 났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제력이 대단한 사람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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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과 함께 남편의 이모 댁으로 갔다.
경산 하양읍에 계신 이모, 이모부, 외사촌 가족들. 결혼식에 오셨어도 기억을 못 하기에 오늘 제대로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모둠회를, 그곳에서는 불고기랑 명절 음식을 맛깔나게 준비했다. 꼬마 세명이 회를 보자마자 자리를 잡고 젓가락으로 회를 먹는 모습을 보며 1차 충격. 세네 살 터울이 있는 삼남매가 잘 노는 모습을 보면서 2차 충격이었다. 캬, 오늘은 회에 양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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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은 후엔 역시 과일이다.
메론, 수박, 배, 사과, 포도가 총출동했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누군가가 깎아놓은 과일. 귀차니즘의 끝판왕이랄까. 안 그래도 맛있는데 과일이 다 싱싱하고 맛있었다. 커피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더니 배가 금세 차 버렸다. 장소를 옮겨 다른 곳에서는 귤, 포도, 사과가 나왔다. 어머님 친구분은 사과밭을 하셔서 그 자리에서 바로 딴 포도와 사과가 내 눈 앞에 있다. 초록사과도, 빨간 사과도 매력을 뽐내고 있다. 이래서 대구는 사과였던가. 너무 맛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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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때 집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남편은 조문을 하러 갔고, 나는 집을 지키며 시원하게 휴식시간을 즐겼다. 아, 이 좋은 공간을 두고 우린 왜 이렇게 밖으로 나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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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모든 일정을 다 소화한 우리는 그제서야 일요일다운 일요일을 보낸다. ‘멜로가 체질’ 10화, 11화를 연달아 쭉쭉 보면서 샤인 머스캣이 등장했다. 화면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요상한 연상작용을 하는 이숭이는 핫도그를 먹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의견 200%를 수렴해서 바삭바삭하게 핫도그를 데웠다. 케첩, 허니머스터드, 설탕은 필수. 냠냠쩝쩝. 이게 휴식이지. 너무 맛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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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이 정말 고생했어’라고 말하는 남편.
이에 질세라 ‘여보가 더 고생했지!!!’하면서 버럭하는 이숭이. 우리의 대화엔 끝이 없고, 결국은 ‘우리 둘 다 고생했어’라고 마무리 짓는 밤. 바빴지만 넉넉하고 풍요로웠던 마음, 한가위, 우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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