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8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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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금요일,
여행 짐을 꾸리는 건 왜 이리 귀찮을까.
여행 가기 전 날엔 왜 일찍 자기 싫을까.
내 짐은 왜 이리 많을까. 떠나고 싶으면서도 집에 콕 있고 싶은 마음은 왜 그럴까. 무수한 물음표를 남기는 이숭이표 여행. 캔들, 라이터, 나무 그릇을 가방에 넣고 돗자리까지 챙기려다 가자미 눈이 돼버린 남편을 발견하고 나서야 참기로 한다. 언제쯤이면 쿨한 여행 짐, 쿨한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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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남편이 먼저 일어나고 꾸물꾸물거리며 침대 위를 굴러다니는 이숭이. 날씨 영향을 잘 받는 몸이라 아침부터 천근만근 상태로 하루를 열었다. 날씨 요정도 피곤했는지 비를 뿌리고 있었다. 그래도 주말엔 화창하다고 했으니 자전거를 탈 수 있겠다. 자, 이제는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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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의 하동, 구례가 참 예뻤다.
봄이랑은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곳. 신비할 정도로 펼쳐진 황금들판, 우리를 반겼던 감나무 가로수들, 선선하기 걷기 좋았던 온도가 생각나서 이번 여행도 하동, 구례로 정했다. 날씨는 흐려도, 비가 내려도 괜찮을 거라며 부푼 기대를 안고 쭉쭉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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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읍내로 들어선다.
작년에 먹고 반했던 콩국수집에 또 갔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한번 마음에 들면 또 가보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꽂히면 질릴 때까지 계속 가는 스타일. 식탁에 놓인 설탕, 소금 중에 소금 몇 숟가락을 넣고 약간은 짭짤한 맛이 감돌만큼 간을 맞췄다. 호로록호로록.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셨더니 배가 빵빵해졌다.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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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카페 하동.
지난번에 왔다가 휴일인 걸 놓치고 가게 앞 의자에 앉아서 땀을 식히다 돌아갔다. 오늘은 운이 좋게도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금 밥을 먹고 커피, 차, 와플을 주문하는 우리는 배부른 티를 내지 않고 열심히 먹는다. 흐린 날 빵 냄새는 그 순간을, 여행 분위기를 더 사랑스럽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행자의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아, 여유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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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왔다.
친절한 사장님은 100년 고택에 대해, 여기에 머물고 있는 고양이들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숙소에 오자마자 날씨 요정이 찾아왔다. 남편은 고양이들을 보자마자 입꼬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폰을 들고, 한 손은 고양이를 만져주는 세상 바쁜 손. 그리고 유난히 강아지처럼 애정을, 애교를 보여주는 치즈 고양이 덕분에 내 눈은 하트 뿅뿅뿅으로 바뀌었다. 내 팔 사이로, 내 다리 위로 다가오는 고양이한테서 온기가 느껴진다. 오늘의 사랑스러운 순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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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만 여기서 키우고 다섯 마리는 그냥 놀러 온다.
그중에서 제일 덩치 큰 고양이한테서 대장 포스가 느껴졌다. 서열이 보였지만, 사장님 덕분에 고양이들이 배부르게 밥을 먹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남편은 어느새 나뭇가지에 줄을 매달아 장난감을 만들었다. 그걸로 휙휙 놀아주는데 강아지 같은 그 고양이가 제일 잘 놀았다. 노련하지 않은 내가 쇽쇽 나뭇가지를 흔들면, 재미가 없는지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이거 너무 솔직한 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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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어두워져서 저녁밥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녹차 오리고기를 구워 먹고 밥까지 볶아먹는 위대한 탄수화물 민족이었다. 누룽지처럼 노릇한 볶음밥이 맛있어서 신나게 먹고는 물 하나, 막걸리 하나, 과자를 사들고 방으로 돌아온다. 텔레비전이 없는 삶을 살고 있어도 ‘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는 봐야 한다. 5화, 6화를 연달아 보면서 악양마을 정감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먹태도 집어 먹고, 뻥소리 과자까지 징하게 먹다가 끝나는 오늘 하루. 참 정감 있는 여행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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