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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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일요일,
잠깐 누웠는데 아침이었다.
알람이 일요일엔 쉬는 줄 알았더니 평소만큼 일찍 울린다. 7시 30분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물기만 털어냈다. 눈을 그리지 않은 상태로 남편이랑 조식을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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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손님들과 함께 조식 시간을 8시로 맞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큰 식탁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같이 먹는 아침밥의 풍경. 온통 채식으로 준비된 정갈한 음식들이 우리 앞에 있다. 채식 강사님을 모신 듯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사장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는지는 몰라도, 이파리를 씹으면 레몬처럼 새콤한 맛이 난다는 걸 알게 됐다. 기름을 쓰지 않고 나물을 무칠 수 있다는 것도,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도 고유의 맛을 내는 것도 알게 된 채식의 세계. 텃밭에서 기른 농작물이 오늘 우리에게 찾아온 사장님의 정성을, 소박하지만 풍성한 음식 맛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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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으로 가서 빈둥빈둥거리는 우리.
곧 자리를 잡더니 등이 점점 땅에 닿기 시작했다. 금세 곯아떨어졌다. 삼십 분만 자기로 했는데 일어날 생각이 없다. 한 시간, 두 시간 가까이 자고 일어나서 짐을 챙긴다. 잠결에 들리는 사람 소리, 새소리, 자동차 소리가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편안하게 잘 잤다며 만족스러운 상태로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숙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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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마을엔 큰 도토리나무가 있다.
작년에 우연히 발견하고는 그 밑에서 한참을 놀았는데, 이번에도 보고 싶어 도토리 사냥을 떠났다. 해먹은 사라졌지만, 도토리나무는 그대로 있다. 낙엽들 사이에 도토리가 보인다. 나무에서 도토리가 한 알씩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빵빵 웃음이 터졌다. 이 동네 다람쥐들에게 로또처럼, 계 탄 듯 도토리 산을 만들어주려고 하나둘씩 모았다. 양손 가득 도토리를 들고 산을 만들며 놀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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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해 누구냐며 묻는데, 아주 잠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그러다 ‘놀러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저~쪽 동네에서 여기까지 도토리를 주으러 오셨던 거였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했지만, 우리는 도토리를 주워갈 생각이 없어 보였는지 금방 경계를 풀었다. 캥거루처럼 할머니의 배 쪽에 주머니 가득 담긴 도토리를 보며, 내심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주웠던 도토리마저 다 들고 가신다. 고맙다며, 잘 가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할머니.. 그거 다람쥐 식량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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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잎 백반을 먹고 구례읍으로 향했다.
맥심 한 잔을 마시고 커피숍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또 마셨다. 각자 책을 읽으면서 서로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참을 놀다가 또 카페로 갔다. 우리가 좋아하는 ‘티읕’ 카페. 오랜만에 만난 사장님, 날다람조씨와 안부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또 마신다. 남편은 신맛이 느껴지는 온두라스 커피를, 나는 고소한 과테말라 커피를 마신다. 여전히 반갑고. 좋은 이 곳을 다녀갈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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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자.
한참을 달려가다가 고속도로 갓길에 까만 강아지가 보였다. 차를 세울 수 없어 직진을 하다가 남편이랑 다시 차를 돌린다. 고속도로는 위험하니까 강아지를 덜 위험한 곳으로 대피시켜줄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보이지 않아서 10km 정도 다시 돌아가서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봤지만, 강아지가 보이지 않는다. 무사하면 됐다고 위안을 삼지만, 내심 아쉽기도 했다. 잠깐이지만 용기를 냈던 우리, 갈 길이 구만리인데도 차를 돌렸던 남편이 고마웠다. 강아지가 부디 안전한 곳으로 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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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집이다!!!
역시 집이 최고였다. 우리를 가장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곳을 놔두고 2박 3일 동안 집을 비웠다. 여행도 좋지만, 밖을 갔다 오면 집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다. 이번 가을 여행도 즐겁게, 재미있게 잘 다녀왔다. 가을 분위기를 한껏 느꼈던 하동과 구례, 귀여운 고양이월드, 정갈했던 음식들, 맛있었던 커피, 씽씽 달렸던 자전거 라이딩, 시골을 좋아하게 만드는 불 때는 냄새, 둘 만의 막걸리 파티 등 모두 다 좋았다. 가을 만세, 하동 만세, 구례 만세, 용식이 만세, 남편 만세. 만세 외치고 잠이나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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