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7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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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일요일,
왕뚜껑을 먹고 새벽 두 시까지 놀다가 잠이 든다.
나는 남편 옆에서, 남편은 내 옆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로 꿈나라로 떠나는 우리. 굿나잇, 그리고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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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남편이 먼저 깼다.
상자에 짐을 한가득 싣더니 주차장으로 떠났다. 옆에서 손전등은 챙겼는지, 수건은 챙겼는지 몇 개의 준비물들을 되물어보곤 했다. 엔진오일 교환, 부릉이 경적을 빵빵이로 바꾸기, 느슨해진 안전벨트 부품 바꾸기, 날카로운 문 손잡이 부품 바꾸기는 남편의 퀘스트. 비상식량은 물 한 병, 밤양갱 하나, 다이제 과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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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세탁조 청소를 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그냥 계속 돌리고 돌리다 헹굼을 눌렀다. 다음엔 세탁조 세제를 넣어서 관리를 해야겠다. 뭐든 주기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것 같다. 그새 남편이 돌아왔다. 제일 중요한 엔진오일을 못 갈았다고 했다. 문 손잡이도 크기가 안 맞아서 못했단다. 찜찜한 상태로 돌아와서 몹시 기분이 이상하다고 하길래 괜찮다며 달래준다. 나한텐 이미 만능인 남편이라서 괜찮다. 그것 좀 못하면 어떤가. 괜찮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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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가 되기 전에 저녁을 차렸다.
남편표 등심 로제 파스타. 닭고기를 사러 갔는데 없어서 사온 등심과 양송이 대신에 느타리버섯으로 휘이휘이 넣어 볶았다. 남편이 부엌에 들어설 때면 나는 자연스레 보조 요리사로 변신한다. 계속 나오는 그릇과 주방도구를 틈틈이 설거지를 하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남은 치커리를 탈탈 털어 샐러드를 무쳤다. 완성된 파스타를 앞에 두고 서로의 눈동자에 맥주 건배를 했다. 면을 삶을 때 간이 잘 배였는지 만족스러운 맛이 나왔다. 너무너무 맛있다며 알랑방귀를 뀌기도 했지만, 너무너무 맛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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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마시는 맥주에 약한 남편은 한 잔을 마시고 느릿느릿 거북이가 됐다. 눈도 꿈뻑꿈뻑하더니 결국은 앉아서 자다가 잠시 후에는 누워서 잠을 잤다. 혼자서 과자를 부스럭거리며 먹고 있는데 그 소리에 남편이 깼다. 헤헤헤헤. 레몬에이드 한 잔을 타놓고 보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팀 버튼 감독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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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할 일을 하며 놀고 있는데 갑자기 부엌에서 펑! 소리가 났다. 달걀은 다 삶았고, 호박고구마를 구우려고 돌려놨던 기계 쪽이 이상하다. 둘이서 가까이 다가가서 봤더니, 세상에나. 호박고구마 하나가 펑! 터져서 혼자 노란색 파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 또 이런 적은 처음이라 꽤 당황스러운 우리는, 금세 웃고 넘겼다. 고구마가 웃겨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시트콤 같은 일상들. 오늘도 잘 웃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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