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8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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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건네는 말.
‘여보 여보! 결혼기념일 축하해요’. 그리고 돌아오는 말 ‘결혼해줘서 고마워’. 월요일 아침부터 몽글몽글해진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우리의 애틋하고 소중한 하루 중 6시간이나 지났다. 남편 덕분에 이번 주가 행복하게 시작됐다. 그리고 일주일도 그저 행복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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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롯이 수업 준비를 했다.
부랴부랴 손글씨를 쓰고 이것저것 짐을 챙긴다. 통영 이후로 처음 나가는 손글씨 수업. 나는 과연 내일 울렁증을 잘 넘길 수 있을 것인가. 준비해 간 건 다 하고 와야지. 하지만, 언제 다 챙기고 연습을 끝낼지는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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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시험기간에는 공부 빼고 재밌다더니..
수업 준비 빼고 다 재미있다. 컴퓨터 폰트는 왜 눈에 들어오고, 포털 사이트 뉴스 기사와 검색어는 왜 궁금한지. 서랍 속은 왜 열고 싶은지. 결혼기념일이 왜 자꾸 떠오르는지. 잡생각은 왜 자꾸 왔다 갔다 하는지. 배는 왜 고프고, 커피는 왜 이리 마시고 싶은지.. 집중력 제로 이숭이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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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 갔다.
우리의 달콤한 시간을 위해, 달달한 케이크를 사러 갔는데 내가 생각한 것들은 다 나가고 없다. 그중에서 화려한 호박케이크를 샀더니 할로윈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퇴근한 남편이랑 같이 바깥 음식을 먹으러 나왔다. 고급스러운 그런 곳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양꼬치 아니면 삼겹살 중에서 당당하게 삼겹살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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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엔 막걸리지!
요즘 막걸리에 맛 들인 우리는 호기롭게 가평 잣 막걸리를 시켰다. 입에서 잣 맛이 계속 맴돌던데 그냥 그냥 마실만했다. 고깃집에서 획득?한 된장찌개와 함께 파티는 계속됐다. 틈틈이 짠-을 하면서 5인분을 먹고 배를 통통거리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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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는 마트 오락실.
농구게임을 하러 갔는데 오락기들 절반이 꺼져있어서 헛걸음을 했다.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쉬우니까 동전 노래방으로 간다. 첫 곡은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을 라이브로 불러주는 남편. 핏대를 세워가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우리였다. 요즘 동전 노래방은 선곡을 하는데 3분 안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노래가 자동 실행이 된다. 뭘 부를지 엄청 고민하고 있는데 노래가 나오는 바람에 기분이 상했다. 마지막에 부른 건 잘 모르는 다비치 노래라 다시 나와도 따라 부를 수도 없었다. 정 없는 기계, 야박한 시스템에 화가 난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다음에 노래 리스트를 적어와서 불러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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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다정했다.
볼멘소리를 했지만 둘 만의 개그 코드로 낄낄거리기 바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순간, 남편한테서 뽀시락 뽀시락 소리가 들린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꽃다발을 보자마자 눈이 똥그래진다. 이건 또 언제 숨겼대. 낮에 꽃을 사러 가고 싶었는데 못 가서 내심 마음에 걸렸는데, 남편이 꽃을 건네주다니.. 로맨티스트 여기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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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와인파티를 열었다.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열다가 오프너는 박살이 났지만, 그래도 로맨틱한 우리집이었다. 귀여운 호박케이크에 초를 꽂고 함께 후- 불어 본다. 헤헤. 남편의 또각또각 손편지까지 받고 갑자기 폭풍눈물을 흘리는 이숭이. 그러다 또 웃는 이숭이. 결혼식에서 광대 승천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금방 가버린 것 같아 놀랍다.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적 없었던 2년의 시간들. 모든 날, 모든 순간을 함께여서 기쁘다고. 고맙다고.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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