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6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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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토요일,
토요일 시작은 새벽 5시 50분.
씻다가 등에 담이 걸리고 말았다. 급한 대로 남편한테 등을 좀 만져달라 하면서 뭉친 근육을 풀어보려 했지만, 더 심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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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 댁 근처에서 다 같이 버스를 탄다.
남편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8시쯤 대구에서 인천으로 출-발. 부릉부릉 버스에는 친척분들 반, 신부 친구들 반 정도가 타 있었다. 차가 고속도로에 올려지는 동시에 일사천리로 간식이 하나씩 나눠졌다. 떡, 과자, 카라멜, 밀감, 물이랑 음료수, 그리고 밥. 밥? 영양찰밥을 버스에 먹다니... 신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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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을 뿜어대는 속을 밥으로 달래고 곧 눈을 감았다.
‘이제 잠의 세계로 떠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때 누군가가 리모컨으로 화면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나훈아 아저씨 노래가 울려 퍼지다가 디스코 메들리, 관광버스 음악, 트로트 등 엄청 많은 usb 파일 중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고르고 있다. 그러다 각설이 품바로 결정. 화면은 지역축제에 돌아다니는 품바 영상이 나왔다.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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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스러울 거라 생각했던 버스는 꽤 잔잔했고, 우리는 열심히 잠을 잘 수 있었다. 12시쯤 넘어서 도착한 인천 문학경기장. 여기서 또 반전이 있었는데, 결혼식이 2시 20분이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달려왔는데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다니... 오 마이갓. 그렇게 우리는 로비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예식 한 시간 전에 뷔페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밥이 코에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급하게 먹느라 바빴던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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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들과 함께 한복을 갈아입었다.
내가 한복을 입고 결혼식장에 가다니. 알록달록 한복을 입었지만 다림질을 하지 않고 입었더니 쭈굴쭈굴 대마왕이 돼버렸다. 다음에는 꼭 다림질을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번에는 고름이 문제였는데, 고름이 예쁘게 안매져서 1차로 어머님, 2차로 형님이 수정을 해주시다, 결국은 업체 직원분이 깔끔하게 처리해주셨다. 오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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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보니 우리 결혼식이 계속 생각났다.

벌써 2년이나 흘렀다니, 시간이 참 빠르다. 오늘 결혼식은 무사히 잘 끝났고, 또 한참을 기다리다가 오후 5시가 되기 전에 버스에 올라탔다. 다시 시작되는 간식 나눔의 현장. 이번에는 사이다, 김밥과 과일, 심지어 닭강정과 맥주까지!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화개장터 같은 버스였다. 다시 배를 채우고 꿈나라로 빠져드는 우리는 참말로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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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라면 걱정과는 달리 평화롭게 버스 체험을 했다고 마음을 내려놓는 그 순간! 아버님이 노래 한 자락을 부르시고 다들 갑자기 흥겨운 잔치 한마당으로 변신했다. 역시 방심은 금물. 그때부터 집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약 한 시간 반 정도는 노래방 기계가 쉬지 않았다고 하는데...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 조명이 화려하게 움직였던 버스가 기억난다. 물개 박수를 치던 내가 떠올랐다. 몇 차례 우리에게 마이크가 왔지만 몇 번을 거절하다가 결국 나도 한 곡을 부른다. 어머님 아버님의 어깨뿜뿜을 위해.. 그러나 몹쓸 노래실력이라.... 흐흐. 이하 생략... 다음에는 삼태기 메들리를 부르덩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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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이다.
밤 열 시쯤 도착할 거라던 누군가의 말을 흘려듣지 말았어야 했다. 정확하게 열 시에 집에 온 우리는 ‘역시 집이 최고’라며 드디어 한숨을 돌린다. 일기만 쓰고 누우면 끝인데, 남편이 콘칲이 먹고 싶다며 유혹 한 번, 왕뚜껑이 먹고 싶다는 유혹 두 번을 외쳤다. 결국 뜨거운 물을 부어 호로록호로록. 내일 걱정은 없는 우리는 라면 하나로 행복을 붙잡은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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