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2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_
_
11월 12일 화요일,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 새벽.
리듬이 깨지니까 너무 늦지 않게 잠들려고 하지만, 때로는 그 조용한 시간을 찾기도 한다. 남편이 잠들고 혼자서 보내는 고요한 시간. 그림에 집중하고 순간에 집중해본다. 거실을 정리하고 방에 들어와 누웠을 때 느껴지는 이불의 따뜻함이, 달콤하게 자고 있는 남편의 숨소리가 편안하게 만들었다.
.
9시 운동을 못 갔다.
30분만 자려고 누웠다가 세상모르고 쿨쿨쿨. 캠핑을 떠났는데 멈추지 않는 코피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던 꿈이었다. 오늘 비싼 운동하는 날인데... 빠져서 돈 날렸지만, 잘 잔 걸로 위안을 삼아야지. 사실은 반성해야지. 내일은 운동 갈 테야.
.
배가 꼬르륵.
사과 한 개를 깎아먹고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애증의 드립백. 드립백을 한 번도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제일 처음엔 위를 안 뜯고 티백처럼 퐁퐁퐁 사용했는가 하면, 뜯는데 펑 터지거나, 잘 뜯고 담갔는데 고리가 컵에 빠지는 별 일들이 생긴다. 오늘은 뜯다가 여기저기 흘렸지 뭐.. 아이참. 커피를 마시면서 영화 ‘레이디 버드’를 봤다. 낮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주인공들을 그렸는데, 여기에 티모시 샬라메가 나온다. 어떤 역이든 잘 어울리는 엘리오, 아니 카일.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엄마의 잔소리가 유난히 그리워진다. 엄마.
.
해가 지기 전에 집 앞 마트에 다녀왔다.
달걀 한 판, 콩나물, 우유를 샀다. 그리고 바로 저녁 준비 시작. 메뉴는 고구마밥, 콩나물무침, 애호박전. 콩나물 한 봉지를 사면 대가리랑 꼬리를 떼는 게 일이다. 대충 하자니 마음에 걸리고 하나하나 하려니 시간이 걸리는 하찮지만 필요한 일. 그래도 다 하고 나면 괜히 뿌듯해지는 성취감. 오늘도 요리꿈나무는 조금씩 성장하는 중이다.
.
남편이랑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야무지게 장갑까지 끼고 동네 한 바퀴를 쭈욱 돌았다. 바깥공기는 차갑지만 나란히 걷는 게 좋아서 정해진 곳 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놀이터에서 운동기구, 미끄럼틀을 가지고 놀기도 했다. 그러다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기로 한다. 한쪽에 벗어 놓은 신발들. 곧 정체가 밝혀지는 맨발 부대들. 여섯일곱 명 정도의 사람들이 맨발로 흙바닭을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
‘나의 아저씨’ 2화.
집에 텔레비전은 없어도 영화랑 드라마를 잘 보고 있다. 저녁밥을 같이 먹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어 매일이 감사하다. 시답잖은 농담, 밑도 끝도 없는 아무 말들, 속에 있는 이야기들, 시시콜콜한 대화 그런 것들 모두. 덕분에 나는 잘 웃는 사람, 안정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웃자. 으짜으짜. 오늘도 내일도 웃어야지.
_

작가의 이전글20191111 이숭이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