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9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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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 금요일,
별 걱정 없는 목요일 밤.
다음날을 위해 이불속으로 들어간 이숭이는 동물 극장 게임을 잠깐 하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남편은 한참 동안 폰을 가지고 놀았다고 했다. 10시쯤에는 서울로 가자며. 현실은 오늘도 꾸물꾸물 거리는 늑장 대마왕이었다. 10시 반은 무슨. 짐 한 가득을 싣고 10시 반에 드디어 나왔다. 동네빵집에 가서 뜨끈뜨끈 식빵이랑 크림치즈빵, 커피 두 잔을 들고 서울로 떠난다. 오늘도 운전대를 잡은 남편과 함께, 동률님을 만나러 가자. 아, 일단 휴게소 매직 소시지 하나만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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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입성 30분 전부터 비몽사몽.
헤드뱅잉 이숭이는 목이 부러질 듯 꾸벅꾸벅거린다. 이래서 목이 아픈 걸까. 서울에 오면 파리지옥처럼 빠져드는 곳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남편 친구 집. 우리를 위해 집을 비워준 고마운 사람이다. 숙소를 해결한 것만으로도 아주 든든한 여행이 되고 있는 우리는 짐만 놔두고 밖으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세종문화회관으로 고고. 일 년 전 항생제 부작용 때문에 배탈로 고생했던 동률님 콘서트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번에는 아무 탈 없이 잔잔하게 지나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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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여덟 시인데 도착한 시간은 5시.
두 시간 전부터 입장인데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우리도 줄을 서서 칼바람 서울 바람을 맞고 있는데 그 와중에 배가 고픈 건 뭐람. 강철 추위 속에서 남편이 사 온 버거킹 햄버거를 신나게 뜯고 콜라 한 모금에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지인 덕분에 콘서트 꿀팁까지 듣고 드디어 입장했다. 이번 굿즈는 캔들인데, 하나만 사려다 두 개가 예뻐서 고민했는데, 세 개를 산 건 뭐지. 물욕이 넘쳐흐르는 동률님 콘서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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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굿즈를 사는 동안 남편을 2층으로 보냈다.
망원경을 대여해주는 오페라글라스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준 덕분에 동률님 눈코입을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망원경을 사용하는 요령이 없는지 멀미날 듯 어지럽다. 그래도 틈틈이 중간중간에 물을 마시거나 말을 하는 동률님 얼굴, 손을 보느라 바쁘다. 하지만 얼굴보다는 집중해서 노래를 들어야 하기에 귀를 더 쫑긋 세워본다. 망원경이랑 맞바꾼 포토존에서의 우리 사진. 입장하자마자 로비에서 들려오는 동률님의 노래에 왜 이리 떨리는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팬카페, sns에 셋 리스트를 알게 될 까 봐 조심했던 나의 노력을 알았는지, 어메이징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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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노래가 아니라 동률님 마음대로 선곡한 노래들로 꾸려진 콘서트. 오래된 노래. 내가 듣고 싶었던 잔향, 동반자, 고독한 항해가 흘러나오다니. 자주 소름이 돋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나대고 있는데 잔향에서 참았던 눈물이 주루룩... 편곡의 왕 동률님...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의 오래된 친구 김정원님의 연주도 럽럽럽. 미칠듯한 빛과 소리의 향연, 내 옆에서 들려주는 듯한 오케스트라, 마성의 동률님. 이번 공연에 이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올해 운을 여기에 다 쓴 것 같다. 이 곳에 우리가 함께한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존경스러울 정도로 대단했던 공연 만세. 남편 만세, 동률님 만세. 김동률. 킹동률. 오 나의 동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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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아프다.
잔잔한 공연인데 목이 아픈 건 아이러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지만 돌아온 만큼 길을 되돌아갔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그곳으로. 남편 친구랑 셋이서 이자카야로 갔다. 우리를 반겨주는 맥주 한 잔과 참치회, 숙주 차돌박이랑 가라아게. 뭐든 어울리는 금요일 밤 우리의 회식. 부어라 마셔라 그냥 마시게 되는 걱정 없는 금요일을 신나게 보내고 드디어 잘 시간이 찾아왔다. 내일을 위해 자러 가야지. 모두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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