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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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일요일,
토요일을 토요일스럽게 잘 보냈다.
토요일엔 통닭을, 일요일엔 평화를. 알람 소리에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눈을 뜨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이다. 잘만큼 자고 일어나 움직이고 침대에서 꼬물꼬물 거리며 폰을 만지고 노는 우리의 일요일은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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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하고 드라마를 틀었다.
‘나의 아저씨’ 최종화. 밀감을 한가득 가져와서 신나게 까먹는다. 누가 누가 많이 먹나 내기를 한 것도 아닌데 둘 다 손이 빠르다. 바삐 껍질을 까서 입에 쏙 넣고, 내가 가지고 있는 귤 반쪽을 서로에게 나눠준다. 손끝이 노래지고 손톱이 노래진 우리의 밀감럽. 마지막 대사가 계속 생각난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라고 묻는 동훈의 말. 세상에 좋은 인연, 귀한 인연이 있음을 깨닫고 날이 섰던 마음이 동글동글하게 변해가던 것도 주변 사람 덕분이겠지. 동백이도 용식이도, 지안이도, 동훈이도, 후계동 사람들도, 우리도 진짜, 행복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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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점심 메뉴가 정해졌다.
카레와 굴전. 남편은 카레 담당, 나는 밥이랑 굴전. 야채는 당근이랑 양파뿐이라 두 개만 가지고 카레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시지 하나씩 굽고 그 위에 올리면 끝. 엄마가 공유한 꿀팁으로 굴을 부쳤다. 부치기 전에 깨끗이 씻고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다. 그러면 모양도 흐트러지지 않게 부칠 수 있다. 달걀물에 파를 넣고 한 숟가락씩 퍼서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카레 넣기 전에 당근 조금 빼놓을 걸. 꽤 많이 익은 김치랑 먹는 든든한 우리의 식사가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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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 스피커를 옮겨 달았다.
시험해볼 겸 틀어 놓은 박지윤, 김동률 노래를 자장가 삼아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낮잠도 시원하게 두 시간은 잔 듯.. 어둑해질 때 깬 우리는 외투를 꽁꽁 껴입고 밖으로 나왔다. 산책 겸 전자 대리점에 가서 구경을 하고 큰길을 따라 쭈욱 걸어갔다. 장갑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잃어버리고 숨어서 없는 장갑들. 결국은 구멍 난 장갑을 끼고 돌아다닌다. 이것마저 없으면 시렸을 텐데 불행 중 다행이랄까. 찬바람 불어도 둘이는 참 재미있다. 걷고 걸어 분식집에 도착한 우리는 잎새 만두 다섯 개, 염통 꼬치 네 개, 어묵 4개를 먹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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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디저트는 밀감.
한 바구니 담아와서 부지런히 까먹고 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먹었던 과일은 오랜만인 것 같다. 둘이서 쉬지 않고 계속 오물오물. 고수의 귤 까기 아트 책을 펼쳤지만, 예쁘게 깔 시간이 없다. 입으로 들어가기 바쁜 룐귤. 냠냠냠. 맛있다. 귤귤. 하루에 스무 개는 기본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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