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2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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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목요일,
상쾌한 공기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창문부터 활-짝 열어두고 밖으로 나왔다. 내일 시아버지 생신파티가 있어 시장에 가서 장을 보기로 했다. 혹시나 잊을까 봐 메모장에 살 것들을 적었다. 당근, 마늘, 시금치, 쌈채소, 버섯, 딸기를 사고 근처에 있는 분식집에 가서 참치김밥 한 줄도 샀다. 가게 김밥들은 큼지막하고 두께가 있어서 ‘얇게 썰어달라’는 주문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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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랑 삶은 달걀을 제쳐두고 김밥을 먹는다.
냠냠냠. 후식은 따뜻한 맥심 커피 한 잔. 그리고 오늘의 영화를 찾아본다. 늦게 컴퓨터를 켜서 러닝 시간이 짧은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로 정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저장하는 능력이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늘 볼 때마다 새롭고 낯설어서 봤던 것들을 다시 찾는 이유도 있다. 이 애니메이션도 예전에 봤던 건데 기억이 안 나.. 일본 도시와 자연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풍경이 예뻐서, 감정을 섬세하게 잘 표현해서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은 천재였어.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를 초속 5센티라고 하는 것도. 몽글몽글 괜히 옛 감정이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일까. 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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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덜 바쁘려고 미리 음식을 준비했다.
며칠 전에 처음 만들어 본 무생채를 다시 도전했다. 한번 해봤다고 조금 손에 익었지만 여전히 채 썰기는 어렵다. 이제는 시금치무침 차례. 한 단에 3,000원 주고 산 시금치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먹을 만큼만 만들자니 남은 건 버릴 것만 같아서 결국 다 손질해서 데쳤다. 그리고 다시 무를 꺼내서 채를 썰고 들깨가루를 넣어 무나물을 무친다. 남편이 집에 왔을 땐 깨소금 냄새, 참기름 냄새가 솔솔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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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한테 나물 간만 보게 하고는 마트로 향한다.
고기랑 음료수, 팥, 미역만 사면 되는데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시식을 꽤 배부르게 해 버렸다. 방앗간을 지나가듯 소시지, 만두, 핫도그 코너를 돌면서 입 안에 쏙 넣는다. 갑자기 필 받은 남편은 만두 다섯 봉지를 샀다고 한다. 과자를 사지 않고 구경만 하겠다던 나는 바나나킥, 파스타칩, 프레첼을 샀다고 한다. 수중에 있던 생활비를 탈탈 털어 탕진잼을 실천한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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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버거킹 햄버거를 먹었다.
맥도날드랑 맘스터치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버거킹은 도전이다. 햄버거보다 콜라랑 감자가 맛있다니.. 그래도 잘 먹었다. 새 단장을 한 웨이투고 카페에 가서 인사만 나누고 집으로 돌아간다. 때마침 천 원을 발견한 우리는 슈크림 붕어빵 세 개를 사들고 허버버버 먹고 낄낄거렸다. 천 원으로 행복을 사서 기쁜 밤이다. 자기 전에 팥을 삶을랬는데 물에 불려놓고 자야겠다. 모두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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