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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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토요일,
아침 7시에 울리는 알람 소리.
끄고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대로 잠들어버리면 오늘 서울 여행은 없다. 호다닥 화장실에 들어가 재빠르게 씻는다. 분노의 양치질부터 박박박 분노의 머리 감기까지 카리스마가 넘치는 이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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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20분.
예상했던 시간보다 20분 늦게 출발했다. 얼마 가지도 않았으면서 배는 왜 벌써 고픈지, 휴게소에 들러 거하게 아침을 챙겨 먹었다. 자율식당은 뷔페처럼 음식들이 쭉 차려져 있는데 그중에서 먹고 싶은걸 골라서 계산을 하면 된다. 두루치기, 찜닭, 바지락탕, 국물김치, 총각김치, 김, 공깃밥을 골랐더니 1만 4천 원 정도가 나왔다. 꾹꾹 눌러 담은 밥을 다 비운 우리는 다시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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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주차를 하러 가는 동안에 코엑스 앞에 내려준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 가면 ‘자, 놀아라’하면서 나를 쭈욱 떠미는 모션이 재미있다. 입장권을 바꾸고 당당하게 ‘일러스트레이션페어’를 보러 들어갔다. 토요일이라 엄청난 사람 떼가 내 곁에 있다. 이대로라면 답답하고 더울 내 모습이 상상돼 껴입은 옷들을 몇 개 벗었다. 그때가 오후 1시. 파이팅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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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달려가서 유니 작가님을, 그리고 시호 작가님을 만나서 응원을 하고 본격적으로 부스를 돌기 시작했다. 순서나 방향을 정하고 다녀야 빼먹지 않고 구경할 수 있다. 지난여름보다 더 많은 부스.. 1,100팀이 참여했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한다. 밀물 썰물처럼 흘러 다니고 어깨 쿵쿵 사람들에게 치여서 구경을 하기란 쉽지 않지만 어쨌든 다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다닌 덕분에 부스를 다 볼 수 있었다. 너무 많아 다 새롭고 기억이 안나는 건 함정.. 제일 기억에 남은 건 우리에게 초대권을 보내준 옥탑빵 보담 작가님을 만났을 때였다. 오늘 제일 다정한 시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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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올해 여름, 페어에 참여했던 날들이 오버랩됐다.
새삼 그때 우리 부스에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감사해진다.(과거집착형 인간 이숭이) 이렇게 넓고 크고 다양하고 엄청난 곳에서 이숭이월드에 오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감동감동 또 감동이라서 잠깐 코끝이 찡해져 왔다. 바깥세상으로 내딛는 첫 발자국에서 오만감정을 느끼던 뜨거운 여름날이 가고, 또 다른 세상을 구경하러 다니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하루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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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나오기까지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고 준비했을 에너지들이 오롯이 느껴진다. 개성 있는 작품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도, 너무 귀여워 웃게 되는 작품이 많아서 여러모로 자극을 받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열리는 지갑을 막지 않는다. 남편도 나도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야금야금 사들이는 탕진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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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에 나와서 허겁지겁 저녁을 먹는다.
토마토짬뽕과 보쌈, 덮밥과 만두로 배를 채우고 남편 친구랑 셋이서 커피랑 조각 케이크까지 해치웠다. 내려오는 길에 둠칫둠칫 음악을 들을랬더니 블루투스가 작동되지 않는다. 아이참. 아이스커피랑 지렁이젤리로 정신을 붙들어 매고 대구로 내려오는 중인 우리. 30분만 달리면 집이다. 당일치기 서울여행은 짜릿해. 오늘은 이숭이날 이숭이세상 이숭이월드. 그리고 장거리 운전에 페어 구경을 함께 해준 우리 남편 최고. 만세 만세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