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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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 금요일,
스펙터클한 꿈을 꿨다.
일어나자마자 쫑알쫑알거리며 다급했던 상황을 생중계하듯 알려준다. 꿈 내용을 바로 얘기하지 말라고 하던데 남편 앞에서는 그런 미신도 싹 사라진다. 역사에 관한 토론을 하고 자동차 사고 나는 꿈, 목적지까지 꼬불꼬불 미로처럼 찾아가는 고난도 꿈이었다. 아침 일찍 전화랑 문자로 엄마 생신 축하를 해드리고 나서 문자가 하나 더 왔다. 트럭이 엄마 차를 박았다고. 오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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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웅을 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이미 9시는 지났고 요가이모의 부재중 전화가 떠있다. 요새 잘 안 보여서 연락했다고, 얼굴 까먹겠다는 문자 한 통이 나를 못나게 만든다. 2020년에는 진짜 진짜 운동해야지. 게으름뱅이 이숭이야. 체력을 다시 길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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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최악의 하루’를 봤다.
매력적인 배우 한예리의 발성, 목소리, 연기가 인상적이다. 사실 내용보다는 잔잔한 서촌의 영상미, 그리고 해피엔딩이라서 좋았다. 나도 한때, 신이 나를 인내심을 테스트하려는 듯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는 날이 있었다. 발동동거리면서 이제는 제발 멈춰 달라고 외친 적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 꼬여버리고 마는 일들. 인생이란 참 웃긴 게, 더 이상 희망도 없이 최악이라고 여길 때 상쇄될 만한 것이 뿅 나타나기도 한다. 미라클, 기적이 이런 거겠지.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 불편했지만 추억이라 부를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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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출장을 다녀온 남편이랑 같이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달걀 볶음밥과 된장찌개. 큰 그릇에 후라이 하나를 척! 올리고 나물이랑 고추장을 넣고 슥슥 비벼서 한입 먹는다. 꿀맛이었다. 오후에는 영화 ‘두 교황’을 틀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잘 만드는 것 같다. 너무나도 다른 이념을 가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교황 프란치스코의 이야기인데 이게 실화라니.. 연기는 물론이고 일단 두 교황의 싱크로율이 대단하다. 잘 모르고 있었던 가톨릭 교회, 그리고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예전에 봤던 교황 프란치스코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책을 다시 읽고 싶어 졌다. 그때는 숙제처럼 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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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생각나 집 앞 카페로 향했다.
구석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낙서를 하고 시간을 보낸다. 역시 집이 아닌 곳은 나를 더 자발적이게 만드는 것 같다. 퇴근한 남편은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얼굴 도장을 찍는다. 조금 더 남편이랑 있고 싶은 마음과 걷고 싶은 마음에 회식 장소까지 바래다 줬다. 오랜만에 라이브 하면서 마음대로 낙서도 하고 떠드는 자유부인 이숭이. 오늘은 먼저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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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그림에 자주 반한다.
방금 샥샥 그렸는데 동물 두 마리가 나를 웃게 만든다. ‘내가 봐도 내 그림이 귀엽다’며 깔깔깔 웃는 이숭이. 자애로운 이숭이.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며 칭찬을 하고 싱긋 웃는다. 이히히. 쟤들 귀엽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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