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8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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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토요일,
암막커튼을 쳤더니 세상모르고 잤다.
어둑어둑하길래 새벽인 줄 알았는데 10시 30분이다. 으아아아. 쭈욱쭈욱 스트레칭을 하고는 온갖 빨래를 세탁기에 담고 돌린다. 남편이 정성껏 내려주는 따뜻한 커피랑 빵, 사과를 먹으면서 보는 ‘괜찮아 사랑이야’ 10화. 나는 계속 드라마 보라고 하면서 혼자서 수건을 열심히 개고 있었다. 오늘도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네모나게 각진 수건들을 보며 감탄사를 터뜨린다. 후다닥 씻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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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랑 그림 도구를, 남편은 목공놀이 도구를 챙겼다. 집이 아닌 곳에서 시원하게 사포질을 하고 싶다길래 한적하고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럴 때 작업실이 있으면 최고겠지만, 우리는 야외가 작업실이었다. 조용한 시골 마을로 들어가 혼자서 나무판을 갈았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무렵에 목공꿈나무의 놀이를 끝내고 갑자기 칼국수집으로 간다. 칼제비 하나, 잔치국수 하나, 돼지껍데기 한 접시를 시켰다. 호로록호로록 후루룩후루룩. 목덜미에는 땀이 흥건하고 콧물도 훌쩍거릴 정도로 촉촉해졌다. 만족스러운 한 끼를 먹고 마트로 간다. 오랜만에 농구게임 한 판을 하는데 이게 이렇게 숨이 차는 운동이었나. 심장이 요동을 친다. 쿵쿵쿠쿵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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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필요한 건 쌈장이랑 고추장.
집에 고추장이 있지만 떡볶이나 다른 요리를 할 때는 시판용 고추장이 더 맛있는 것 같다. 식초까지 하나 담고, 과자는 한 네 개 담았나. 우리는 장을 보러 오면 제일 용감하게, 쿨하게 담는 게 과자였다. 원래라면 시식용 코너에서 정신을 잃는 이숭이인데, 배부르게 먹었다고 기름 냄새가 맡기 힘들다. 더 돌아볼 생각도 없어서 아이셔 젤리만 하나 슥 집어넣고 계산대를 빠져나왔다. 집에 식초가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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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꿈나무의 나무놀이는 집에서도 계속된다.
나는 그 옆에서 감사일기랑 하루 일기를 남기고 있다. 오늘 우리의 요들송은 라면과 구공탄. 비록 칼제비와 잔치국수를 먹었지만 노래는 라면송. 둘리 만화 보면서 낄낄낄. 이 만화가, 이 장면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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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꼬불꼬불 맛 좋은 라면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나
하루에 열개라도 먹을 수 있어
후루룩짭짭 후루룩짭짭 맛좋은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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