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1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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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토요일,
살금살금 3시에 남편이 들어왔다.
거실이랑 안방에 덜 밝은 조명만 켜놓는다. 나는 이미 꿈나라를 떠났고,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소리에 남편이 들어온 걸 알았다. 늦었으니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이 ‘잘 자’라는 인사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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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오전에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러 갔다.
더 자고 싶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어제오늘 이틀 동안 조용히 보냈다. 내 입이 쫑알쫑알 수다스러워지는 건 남편이 집에 있고 없고의 이유였나 보다. 밀감을 까먹으면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틀었다. 볼 때마다 놀랍고 여운이 남는 미셸 공드리의 작품.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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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간다고 남편한테서 연락이 왔다.
우쭈쭈 고생했다며 다독이고, 올 때 메로나가 아닌 ‘김밥’을 주문하는 이숭이.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말에 저녁 메뉴는 분식으로 결정했다. 후다닥 육수를 내고 떡볶이를 만들고 옆에 냄비는 물을 팔팔 끓였다. 얇은 피 만두를 넣고 7분간 찌면 모락모락 맛있는 연기를 뿜어내는 만두를 만날 수 있다. 고추냉이 소스를 올려 먹으면 꿀맛! 맛있게 먹는, 우리 둘이서 함께 먹는 밥. 좋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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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고 졸린데 자면 토요일이 사라질 까 봐 참아본다.
이럴 땐 스릴러 영화가 괜찮더라. ‘더 게임’을 보는데 신하균과 변희봉 두 사람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초반부터 징그러운 장면이 나와서 놀랬지만, 뒤로 갈수록 괜찮았다. 오늘도 등장한 밀감 까기 인형(남편). 나 한 개, 나 한 개 먹다 보니 밀감산을 이뤘다. 늘어지게 보내는 지금 이 시간이 참 좋다. 만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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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남편이 오고 있는지 밖을 내다보다가 본 보름달. 붉고 커다란 달이 오묘해서 넋 놓고 바라보던 순간. 1월도 스르르 잘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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