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9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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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일요일,
나 먼저 잠들었다.
고양이처럼 눈을 가린다. 남편 팔에 딱 붙어서 주변을 어둡게 만들고, 스르륵 딥슬립에 빠진다. 남편은 유튜브 삼매경. 한 시간 가까이 붙어 있다가 움직이면서 나를 깨웠다. 입이 아래로 향해 있었던 탓에, 깨자마자 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고 했다. 혹시나 침을 많이 흘렸을까 봐.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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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0분에 일어났다.
둘 다 야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눈이 퉁퉁 부었다. 밤늦게 유혹에 넘어갈 뻔했던 라면. ‘라면을 먹었으면 더 부었겠다’고 안심하는 이숭이와 ‘차라리 먹고 잘 걸 그랬다’며 아쉬워하는 남편의 아침 대화. 오늘 왠지 라면을 먹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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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방에서 작업을 하는 목공꿈나무.
흥부처럼 슬금슬금 톱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주 가끔 부탁을 들어주거나 말동무가 되어준다. 11시, 남편이 노래를 부르던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었다. 세모 모양으로 잘라서 달걀물에 적셔서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면 끝. 버터 향기가 솔솔 날아다니는 그 시간이 즐겁다. 과일 친구들 밀감, 사과, 바나나를 담고, 요거트도 꺼냈다. 뚜껑에 묻은 요거트는 핥아먹는 두 사람. 아이스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말하려던 찰나 타이밍을 놓쳤다. 따뜻하게 내려준다. 나는 좀 연하게, 남편은 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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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3화를 보면서 먹는 브런치.
다 먹고 밀감을 구워보기로 했다. 상상이 안 되는 맛이라 몹시 궁금해졌다. 후라이팬에 익는 밀감은 언뜻 고구마 냄새를 뿜어냈다. 둘이서 먹어봤는데, 그저 ‘따뜻한 귤’ 맛에 실망만 했다. 후라이팬이 아닌 숯불에 구워 보면 어떨지 궁금하지만, 일부러 굽지는 않을 것 같다...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따뜻한 귤을 먹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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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으로 라면을 먹는다.
나는 왕뚜껑을, 남편은 머그면을. 어제 남은 밤밥도 살짝 데웠고 서로의 라면을 번갈아 가면서 잘 먹었다. 머그면은 한 젓가락 뜨면 없어서 최소 4봉지는 뜯어야 했다. 밥 먹고 있는데 남편은 계속 자리를 벗어났다. 거참, 되게 왔다 갔다 하는구만. 배도 채웠으니, 산책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다이소에 다녀왔다. 하늘이 깨끗하고 맑아서 계속 쳐다보게 된다. 파스텔로 그리고 샥샥 문지른 듯한 느낌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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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또 오해영’ 4화를 켰다.
우리 앞에 놓인 배, 밀감이랑 보글보글 현미차. 여유롭고 평화로웠던 일요일 밤을 따뜻한 차로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오늘 하루를 한량처럼 보냈음에도 더 부족한지, 남은 시간도 한량이 될 계획이다. 내가 좋아하는 대사, ‘콧노래를 사서 집으로 가자’. 콧노래를 사서 얼른 이불속으로 들어가야지. 모두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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