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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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금요일,
떡을 굽고 치우다가 엄지손가락을 데었다.
흐르는 물에 손가락을 데고 있지만 꽤 따끔거린다. 화장실에서 나온 남편이 눈치챘는지, 바로 냉동실 문을 열었다. 얼음 하나를 꺼내 준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 계속 얼음찜질을 했다. 손이 따갑긴 해도 잠한테는 이길 수 없나 보다. 쿨쿨쿨. 덜렁이는 오늘도 몸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언제쯤이면 안 다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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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 없이도 잘 잤던 밤.
온도가 훅 올라갔다. 18도? 봄인가? 그래도 어깨를 감싸도는 기운은 차가워서 수면잠옷을 계속 입고 있다. 덥다 싶으면 잠옷이랑 양말을 훌렁 벗었다가, 금세 추워지면 담요까지 두르고 있었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건 역시 보리차. 호로록호로록 여유가 흐르는 금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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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유혹에 흔들리는 이숭이.
기도문 중에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는 문구를 보면 흠칫할 때가 많다. 오늘은 라면의 유혹에 빠졌다가 겨우 이겨냈다. 한 박자를 쉬고 사과를 먹는다. 사과만으로는 부족한 허기는 떡국을 불러왔다. 육수를 내고 떡 많이, 만두 세 개를 넣은 알찬 떡국. 라면을 뿌리쳐서, 제대로 된 밥을 먹어서 뿌듯해하는 이숭이. 오늘의 영화는 ‘메기’. 영화를 고를 때 포스터에 끌릴 때가 많다. 포스터, 출연진, 그리고 ‘메기’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보게 됐다. 굉장히 독특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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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발렌타인데이.
편의점에 가서 젤리를 사고, 김밥집에서 김밥 두 줄을 샀다. 차에 타자마자 젤리를 내밀었더니 신난 목소리로 ‘우와’를 외치는 남편. 초콜릿보다 도마뱀 젤리를 좋아할 것 같아서 준비했는데 마음에 들어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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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데이트 렛츠고.
정말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평소보다 불편한 옷을 입었다. 모처럼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아우, 볼이 빵실빵실하고 턱이 두 개여. 그래도 사진 속에는 마냥 신난 내 얼굴이 보인다. 낄낄낄. 발레 공연 초대권을 선물 받았다. 장소는 대구 오페라하우스. 대구에 이런 곳이 있었나. 우리 인생에 없었던 발레 공연을 보러 가는 영광스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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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손소독제는 물론 마스크도 나눠주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보는 공연이라니. 유튜브와 영화 ‘블랙스완’으로 미리 공부하고 온 덕분에 어렵지 않았다. 휴식시간 20분을 포함해서 145분 동안 진행되는 공연. 지금까지 봐왔던 공연이랑은 차원이 다르다. 와. 강수진 예술감독님 만세, 국립발레단 만세. 오페라하우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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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봐도 느껴지는 감정들.
가슴 떨리게 하는 아름다운 군무.
나라별 특징을 살린 춤들.
잔망스러운 광대의 동작.
지그프리트 왕자, 백조 오데트,
흑조 오딜, 악마 로트바르트의 존재감.
장면 장면마다 멋진 음악들.
모든 것들의 섬세함에 넋을 놓고 봤다.
아름답고 황홀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나 보다.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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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 집에 와서도 계속 발레 공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장면은 어떻고, 저 장면은 어떻고. 모든 대화의 끝은 느낌표였다. 머릿속에는 ‘백조의 호수’ 음악이 계속 흘러나온다. 씻고 나온 남편은 머리부터 발 끝까지 까만 복장으로 발레를 선보이고 마는데.. 젤리를 먹어서 귀여워졌나. 우리집 발레리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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