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3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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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목요일,
피융피융 가래떡 굽는 아침이 왔다.
쑥 가래떡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가득 채운다. 사과, 삶은 달걀을 통에 담아주고 씻고 나오는 남편을 기다린다. 물을 마실 때도, 양말을 신을 때도, 핸드크림을 받을 때도 옆에서 치대는 스타일. 신발을 신고 나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착 달라붙어 있는 이숭이의 밀착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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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 왕맑음.
앉아있는데 뭉게뭉게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하늘색 하늘, 선명한 숲 색, 또렷한 산의 선들. 미세먼지를 깨끗하게 씻겨줬는지 시야가 또렷해졌다. 마치 먼지 묻은 안경을 쏴악 닦고 썼을 때의 기분 같았다. 보리차를 우리는 동안 나무에 올라가 발바닥과 뒤꿈치, 종아리의 피로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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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효과가 어마어마하다.
국내는 물론이고 북미, 베트남, 영국, 일본 등 전 세계에서 재개봉 바람이 불고 있다. 심지어 영화 속에 나오는 짜파구리 때문에 농심의 주가가 올랐다나. 올림픽, 월드컵 열기 못지않게 뜨겁게 달구고 있는 기생충, 한국영화와 한류 열풍. 대단한 대한민국,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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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몇 조각을 먹고 부지런히 물을 마신다.
달걀을 두 개 삶고 있는데 배가 너무 고파졌다. 30분 정도를 참을 수가 없어서 후다닥 밥을 데우고 참기름, 간장을 넣고 비벼서 김에 싸 먹었다. 친구인 멸치볶음도 함께 했다. 탄단지를 위해서 달걀도 먹는다. 영화를 보다 말고 식곤증이 찾아왔다. 16도까지 올라간 대구는 봄이 온 것 같다. 그럼에도 수면잠옷을 입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있는 대낮의 순간이 참 행복했다. 별거 아닌 거지만 나만 누릴 수 있는 당장의 기쁨이랄까. 따뜻하게, 부드럽게 낮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언제나 찾아오는 저녁시간.
메뉴는 조밥, 청국장, 두부부침, 배추전, 묵은지 무침, 오이고추무침. 갑자기 필 받아서 반찬을 여러 개 만들었다. 나날이 배추전을 부치는 노하우가 쌓이고 있다. 반죽의 되직함과 먹기 좋은 크기, 노릇노릇함 정도. 정성이 들어가면 늘 맛있어진다.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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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다녀왔다.
혹시 까만 하트코 고양이를 만날지도 모르니 물이랑 간식을 챙겼다. 밤이 되니 공기가 차가웠지만 걷기 좋은 시간이었다. 크게 한 바퀴를 돌고, 가게들이나 간판들 관찰을 하고 오는 우리. 머리를 빗는데 빗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 머리숱은 좀 빠진 것 같은데도 무겁다. 장발이숭이. 미용실은 안 간지도 오래됐는데.. 자르거나 뭔가 해야 할 듯한 머리 상태. 일단 오늘은 영화 ‘블랙스완’을 보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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