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1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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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월요일,
어제는 내가 늦게 자러 갔다.
남편은 수면 안대를 끼고 잠을 자고 있다. 방에 불을 훤하게 켜놓고 나는 폰을 가지고 놀았다. 딱히 뭘 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었던 거 같다. 역시 과한 건 어디서든 티가 난다. 토요일 밤을 늦게까지 붙잡아 둔 만큼 일요일 아침이 사라지고 말았다. 10시 반에 외치는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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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니 남편은 없다.
잠결에 인사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무를 둘러메고 어디론가 떠났다. 우리집 나무꾼의 취미생활. 세수로 정신을 차리고 태극기를 꺼냈다. 뒤늦게 게양 대열에 꼈다. 헤헤.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태극기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우리 아파트 사람들은 진짜 태극기를 잘 단다. 최고. 작년에 삼일절 100주년이라 독립선언서를 적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났다니 시간 참 빠르다. 지난봄과 너무 다른 지금 상황들에 낯설기만 한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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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를 먹을까 하다가 밥을 안친다.
메뉴는 묵은지 참치김밥. 참치는 계획에 없었는데, 맛을 생각하니 조금 더 귀찮기로 했다. 묵은지를 씻어내고 짠맛을 빼는 동안 참치랑 마요네즈를 섞어둔다. 어제 사 온 깻잎까지 꺼내 낑낑거리며 김밥을 말았다. 이파리가 좀 더 컸으면 좋았을 모양이지만, 터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꽤 그럴듯한 모양에 입꼬리가 스윽 올라간다. 그릇에 다 옮겨 담았을 때 남편이 집에 왔다. 고생했다며 입 안에 김밥 꼬다리를 하나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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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라면을 끓였다.
드라마도 다 봤고, 시간을 때우기 좋은 예능을 하나 틀었다. ‘놀면 뭐하니’의 인생라면. 라면이랑 김밥을 먹으면서 라면 방송을 보는 우리. 참치김밥은 역시 맛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 남편은 본가에 다녀왔다. 그동안 열심히 만든 기계를 전해드리러 갔고, 나는 맥심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고양이의 보은’을 봤다. 생각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고양이 떼가 나와서 재미있게 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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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했는지, 컨디션이 똑 떨어진 남편은 씻고 오자마자 눈을 붙였다. 나도 옆에서 쿨쿨쿨. 잠깐만 잔다는 것이 30분은 넘게 잔 거 같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벌써 밥 먹을 시간이 찾아왔다. 메뉴는 토스트. 어제 먹은 토스트가 맛있었는지 둘 다 바로 오케이를 외친다. 한 번 만들어봤다고 여유도 부리고 어제보다 더 크고 알차게 만들어본다. 나는 빵도 하나 더 추가요, 계란은 세 줄씩, 햄도 두 개씩. 그렇다. 칼로리 폭탄 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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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랑 우유, 콜라까지 나와서 우리의 배를 가득 채워준다.
맛있다고, 팔아도 되겠다며 이 세상 호들갑은 다 떨고 있는데, 토스트 하나 만드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슬로우푸드라며 깔깔깔 웃음이 터졌다. 오늘의 영화는 ‘찌라시: 위험한 소문’. 그리고 지금은 고양이처럼 쭈욱 늘어져 있는 중. 3월도 잔잔하게, 평화롭게 잘 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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