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7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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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 토요일,
1시 50분에 깨고 8시에 깼다.
흐린 날씨라 늘어지기 좋은 날, 용케도 우리는 일찍 눈을 떴다. 3월에 입는 롱패딩과 따끈따끈 코트.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끼고 마스크를 구하러 간다. 마스크 5부제, 마스크야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인데도 사람이 없는 길. 이제는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다. 안 쓸 수가 없는 상황이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약국에 왔지만 마스크가 없다. 언제 올지 모른다는 대답만 들을 뿐. 오늘도 헛걸음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으니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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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제일 편하다.
이불속은 어찌나 따뜻한지. 어느새 다시 누워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비까지 내리고 이 순간, 이 시간을 낭비하기 좋은 날씨였다. 초인종 소리에 침대 밑 땅을 밟는다. 아빠 엄마가 보내신 택배였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갇혀 있으면서(‘갇혀 있다’는 표현에서 나의 상황을 깨닫는다) 뭐가 먹고 싶은지, 뭐가 필요한지 물으시던 엄마. 직접 재워둔 갈비, 우리가 좋아하는 추어탕 가게, 멸치랑 떡국 가래, 떡과 야채들. 한 걸음에 달려온 음식이, 우리를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이 상자에 넘치도록 담겨있다. 감사하고 고마움, 그것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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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도그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빵을 잘못 산 바람에 갑자기 계획이 틀어지고, 만드는 방법도 바뀌었다. 갑자기 수제 햄버거로 결정. 오늘도 각자 역할을 나눠서 간식을 완성했다. 꽤 그럴듯한 모습이 나와서 신기하고, 의외로 맛도 괜찮다. 역시 햄버거랑 콜라는 진리였던가. 입이 작은 나는 햄버거를 와구와구 먹기 어렵다. 이거 먹는데도 줄줄 흘렸던 거 같은데, 남편은 빵을 하나 더 넣어 빅맥으로 먹는다. 영화 ‘시동’을 보면서 낄낄거리는 우리의 점심시간. 요즘 마동석씨가 자주 나온다. 어제 영화에도 나왔는데. 단발머리 마동석은 또 색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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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먹은 달고나 커피.
뭔가 만족스럽지 않아 남편 찬스를 썼다. 믹스커피랑 설탕을 넣고 쉴 새 없이 돌린다. 걸쭉하게 나오긴 해도 내가 원하는 모양이 아니다. 우유를 넣어 맛있게 먹었지만, 카페인 때문에 심장이 콩콩거리길래 남겼다. 조만간 그냥 커피로 재도전해야지! 목공꿈나무는 오후 몇 시간을 나무와 함께 보냈다. 요즘 정말 열심히 만들었던 UV살균기. 우리가 사용할 살균기를 테스트하는데 집이 까맣게 바뀌었다. 전기가 왜 내려가니.. 아이참. 혼자서 골똘히 연구를 하더니 드디어 완성했다. 황금 마스크 살균해서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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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엔 통닭 파티를.
옛날에 책 한 권을 떼면 책거리를 하듯, 우리는 파티를 열었다. 그 많은 먹거리를 놔두고 기어코 바깥 음식을 들인다. 뭘 먹을지 에 대한 고민이 돌고 돌아, 자주 먹는 처갓집 양념통닭을 주문했다. 간장이랑 후라이드 반반, 콜라. 그리고 영화 한 편. 지난번에 혼자 봤는데, 또 보고 싶어서 다시 틀었다. ‘천일의 스캔들’. 다시 봐도 충격적이고, 놀랍고, 아름답고, 씁쓸하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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