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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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일요일,
12시 반에 잠들고 9시 전에 일어났다.
주말인데 늦잠도 안 자는 내가 괜히 대단해지는 기분. ‘으아아’ 외치면서 남편을 건드려본다. 우리 둘 다 9시 기상 완료. 빨래를 돌리고 수건을 착착 개어 수납장에 넣어둔다. 언제나 자로 잰 듯 반듯한 것들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남편은 정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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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토스트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하나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긴 해도 맛있어서 다시 찾게 된다. 어제 햄버거를 만들고 남은 재료들을 마구마구 넣어야지. 양상추, 양배추랑 으깬 계란, 당근이랑 양파를 쫑쫑 썰어 넣은 계란, 슬라이스 햄과 치즈, 토마토, 딸기잼이랑 소스들. 틈틈이 도구들을 씻어둔 덕분에 난리를 막을 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 버터에 식빵을 굽고, 잼을 바르고 부지런히 겹겹이 쌓아 올린다. 그리고 부담스럽게 푸석거리는 사과를 소진할 방법으로 에이드를 만들어본다. 미리 갈아뒀더니 갈변하기 시작했고, 맛도 갈색. 이 세상에 없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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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트북’을 봤다.
레이첼 맥 아담스는 어쩜 싱그럽게 웃는지, 보는 내내 푹 빠져서 봤다. 몇 번을 봐도 좋아서, 종종 찾는 영화다. 실은 우리가 만든 오천 칼로리 토스트에 빠졌다. 둘 다 맛있다며 깔깔깔. 과한 재료는 과한 포만감을 안겨준다. 과한 만족감도 있는 우리의 선데이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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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남편 찬스를 썼다.
달고나 커피 재도전! 믹스커피로 두 번을 만들어봤는데 , 맛은 있지만 무거운 거품 때문에 우유 밑으로 가라앉는다. 오늘은 카누로 만들어보자. 별별 도구들이 나와서 힘껏 저어 보다가 색깔이 옅어지면서 거품으로 바뀐다. 오오오. 내가 원했던 모양에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너무 쫀득해서 우유랑 잘 섞이지 않는 데다가, 저으면서 우유가 넘치는 대참사까지 발생하고 만다. 설탕은 덜 들어갔는지 쌉싸름한 맛에 눈썹이 내려갔다. 이름을 바꿔야 할까. ‘달고나’가 아닌 ‘쓰고나’로. 좋은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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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서 녹아내렸다.
팔베개를 베고 30분 동안 달콤한 잠을 잤다. 남편이 내 얼굴 위에 폰을 떨어뜨릴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피했다. 어느덧 밥 먹을 시간이 돼서 쌀을 안친다. 메뉴는 장어구이, 깻잎쌈, 양배추 샐러드, 밑반찬들. 남편이 좋아하는 오징어 젓갈까지 나왔으니까 밥도둑이 될 것 같다. 주말 동안 처음 먹는 곡기. 아주 든든하게 먹고 가위바위보로 설거지 내기까지 하고 노는 일요일.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발견한 싹튼 라일락 나무, 활짝 핀 매화, 올망졸망 자라나는 새싹들. 집 지킴이를 하는 동안 대구에도, 우리 동네에도 봄이 성큼 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