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3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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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 금요일,
흐린 날이라 축 처지는 아침.
남편이 가고 나서 바로 눈을 붙인다. 오늘따라 뒹굴뒹굴거리기 좋은 날이다. 9시인데도 한참을 누워 있다가 ‘빨간 머리 앤’ 4화를 틀었다. 뒷내용도 궁금하지만, 이대로 오전이 다 가버릴 것 같아 박차고 일어났다. 거실에 자리를 잡고 몸을 풀었다. 폼롤러로 슥슥. 내 몸에서는 곡소리가 나는 건지.. 몇 달 사이에 몸이 다 굳은 것 같지만 참 오랜만에 시원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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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쯤에 점심을 차렸다.
갑자기 떡국이 생각나서 떡국 가래랑 굴, 만두 세 개를 해동시켜둔다. 바다향이 가득한 육수에 퐁당퐁당 떡이랑 만두를 넣고, 달걀지단을 대충대충 썰었다. 귀여운 연두색 파도 퐁당퐁당. 그리고 빠지지 않는 미나리도 투척. 난생처음 먹어보는 미나리 떡국은 꽤 괜찮은 맛이었다. 미나리라서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진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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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자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완전히 바깥은 아니지만, 집 밖이니까 외출인 거겠지. 많이 뭉친 다리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운동을 했다. 어제 보다 계단 양을 늘리고, 맨 꼭대기나 맨 아래층에 도착하면 다리를 팡팡 털었다. 어김없이 숨이 차올랐고, 심장은 빨리 뛰었고 다리는 아팠다. 그래도 나와의 약속을 지킨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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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나와 저녁을 준비한다.
라면이 먹고 싶다는 남편의 연락에 바로 오케이. 나는야 미나리 요리사. 식은 밥을 데우고, 미나리를 꺼냈다. 라면만 먹기엔 아쉬워, 뭔가를 하나 더 만들고 싶어서 고민하던 중에 달걀말이가 떠올랐다. 미나리가 들어간 건 처음이니까 미나리를 넣어봐야지. 반은 미나리만, 반은 미나리랑 당근을 섞어서 두 가지 색깔로 해야지. 끓인 라면 위에도 미나리, 반찬으로 생미나리. 오늘도 미나리 파티다.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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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에 초인종이 울렸다.
통장님이 직접 방문을 해서 마스크를 나눠 주신다. 아파트에 등록된 인원수만큼 2장씩이니까 우리는 총 4장을 받았다. 아직까지 마스크를 못 구했으니 새삼 더 귀하게 여기게 된다. 고맙습니다. 각자 폰을 가지고 놀다가 영화를 보기 위해 나란히 앉았다. ‘조작된 도시’를 보다가 도저히 끝까지 못 볼 것 같아 끈다. 잔인하고 섬뜩한 ‘악마를 보았다’. 어우. 오메.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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