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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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일요일,
기억해야 할 날짜가 하나 더 늘었다.
0시가 되자 남편에게 알린다. 3월 15일은 동률님 생일. 따뜻한 봄날에 태어난 동률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궁금 궁금. 마음을 담아, 애정을 담아 생일을 축하합니다. 동률님 만세. 김동률 만세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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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남편이 사라졌다.
본가에 가서 볼일을 보고 1시 전에 올 거라는 말과 함께 나갔다. 잠깐 눈을 붙이다 일어나 ‘빨간 머리 앤’ 7화를 본다. 시즌1 끝. 앞으로 남은 시즌2, 시즌3은 언제 볼진 모르겠지만, 앤이 내게 힘을 주고 있는 건 사실이다. 앤 넌 정말 사랑스러워. 우리 곧 만나자.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폰을 내려둔다.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참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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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득뽀득 씻고 나와 물 한 잔을 들이켰다.
갑자기 궁금해진 미나리 페스토. 조리법이 간단해서 도전해 볼 만하다. 바질 페스토 맛을 즐기지 않지만, 미나리는 먹어보고 싶었다. 올리브유, 소금, 잣, 나리, 치즈, 올리고당만 있으면 된다. (자세한 건 인터넷 레시피 추천) 페스토에 잣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없으니 패스. 유리병을 열탕 소독하고, 믹서기에 재료를 넣고 갈았다. 계량 좀 할걸.. 마늘 맛도 강한 데다가 올리브유가 많은지 묽어지는 바람에 미나리가 계속 추가된다.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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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탕 소독을 하고 식히는 과정에서 유리병 하나가 깨졌다. 달걀 하나도 깨고, 내 정신을 흔든다. 우당탕탕 바쁜 주방에서 돌아가는 미나리 페스토. 그래도 처음 치고는 꽤 괜찮게 완성됐다. 그다음은 토스트 준비. 어제 만들었던 재료들이 다시 나왔다. 계란에 미나리를 넣으면서 미나리 1kg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짝짝짝. 어느새 남편이 와서 빵을 굽고 햄을 구웠다. 커피도 내리고 세월아 네월아 토스트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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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게트 위에 페스토를 슥슥 발랐다.
은근한 마늘맛과 매력적인 미나리, 그리고 계란은 깔끔한 맛이 난다. 커피도, 우유도, 토스트도 다 맛있다. 냠냠냠. 미래의 어느 날에 ‘우리 그때 집에서 참 많이 만들어 먹었는데’, ‘미나리랑 토스트를 징하게 먹었는데’, ‘어떻게 그리 자주 만들어 먹었는지 신기하네’와 같은 말을 할 것 같다. 그냥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함께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뒷정리는 귀찮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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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물’을 봤다.
딱히 추천은 하고 싶지 않지만, 가볍게 보기엔 그냥 그냥 적당한 영화. 배도 부르니 졸음이 밀려온다. 낮잠은 최고의 선물. 둘 다 정신없이 자다가 일어났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왜 이리 고민되는 걸까. 밥? 만두? 라면? 파스타? 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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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고민하다가 미나리 페스토 파스타로 정했다.
파스타는 남편이 만들고 나는 오늘도 옆에서 보조역할을 한다. 갑자기 딸기에이드가 생각나서 부랴부랴 갈고 탄산수를 넣어서 만든다.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6일 동안 매일 미나리를 먹었다. 토스트로 끝일 줄 알았는데, 페스토와 파스타라니. 페스토 파스타는 처음 먹어본 거라 비교가 안 되지만 담백하고 맛있었던 초록 파스타. 와, 정말 네버엔딩미나리. 미나리는 끝이 없나리. 너무 맛있나리. 행복했나리. 즐거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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