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1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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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토요일,
어젯밤 두 번째 시네마는 ‘킹스 스피치’였다.
영국 조지 6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왕의 자리를 포기한 형 때문에 갑자기 왕이 된 버티. 남 부럽지 않을 것 같지만 약점은 존재한다. 말을 더듬어서 연설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운. 트라우마를,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이 잘 담겨있었다. 영화가 끝난 새벽 2시에 우리는 잠을 자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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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씨 영화를 봐서였을까.
꿈에서 섬뜩한 일을 경험했고 너무나 생생했다. 정봉이 아버지가 국밥집 사장님인데 잔인해서 빨리 깨고 싶었다. 휴. 9시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지난주부터 주말엔 마스크를 사러 나간다. 그 외에도 시장과 빵집을 들러야지.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간 약국엔 다행히 어제 재고가 남아있었다. 줄도 없이 마스크를 두 개씩 샀다. 확실히 수급이 많아진 데다 전보다 마스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여유가 생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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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에서 딸기를 샀다.
단골가게에서는 부추랑 재첩, 사과를 사고 빵집에서는 식빵이랑 크루아상을 샀다. 여기가 끝일 줄 알았는데 대형마트로 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이제 마스크는 필수품이 됐다. 파스타면, 부침가루, 과자 등을 담는다. 가는 곳마다 살 게 있어서 생활비가 쭉쭉 나간다. 그래도 밖에 나가서 사 먹고 놀 비용이 이걸로 대체된 거라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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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꼭지를 잘랐는데 속 색깔이 검다.
겉은 싱싱했으니 딸기의 속 상태를 예측할 수 없었다. 먹으려고 했지만 찜찜하다. 가게로 전화를 해서 상황을 얘기했는데, 주인아저씨의 반응이 이상하다. 사진을 보내드리겠다고 했는데, 전화를 툭 끊어버린다. 다시 전화했는데 딸기 상태를 확인할 마음도 없다.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다음에 바꿔주겠다는 말만 하고는 끊어버렸다. 여기서 기분이 상해서, 곧바로 가게에 갔다. 심드렁한 모습으로 우리를 대했고, 들고 간 딸기 상태를 보면서도 심지라며,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되레 기분 안 좋은 표정으로 과도로 딸기를 파헤쳤다. 여기서도 미안하다는 말은 없다. 환불을 했는데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좋게 좋게 넘어갈 수 있었던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아저씨가 미웠다. 한동안 혼자서 씩씩 거리며 궁시렁궁시렁 분을 푸는 나. 아저씨에게 못다 한 말은 남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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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써버렸다.
딸기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없어서 다시 시장으로 갔다. 바깥구경을 하는 건 좋지만, 이런 외출을 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오늘 대구는 25도까지 올라갔다. 땀이 날 정도로 뜨뜻한 날씨가 화를 부추기는 것 같았다. 다행히 친절한 분을 만나서 분노는 눈 녹듯 사르르 사라졌다. 바나나 하나도 주신다. ‘이런 날도 있지’하면서 잊어버리고, 딸기로 간식을 만들어 먹는 우리. 생크림이랑 딸기를 듬뿍 넣은 크루아상과 아이스커피.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 토요 시네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리고 ‘빨간 머리 앤’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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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머리를 깎고 왔다.
시원하고 어려진 모습이었다. 남동생이라고 해도 믿을 듯. 이히히. 둘이서 부지런히 저녁을 준비한다. 메뉴는 재첩국, 재첩전, 부추무침과 양배추 샐러드. 나는 해감을 해놓은 재첩을 삶고, 남편은 부추 손질과 재첩전 반죽을 맡았다. 오늘도 빠지지 않는 미나리, 그리고 새우, 재첩, 부추, 양파를 넣고 슥슥 섞는다. 쫄깃한 재첩이랑 미나리, 부추의 궁합은 잘 맞았다. 반면에 양념을 많이 넣고 버무린 부추무침은 강렬한 맛이었다. 너무 진한, 처음 먹어보는 재첩국 맛에 충격을 받았던 이숭이는 재첩국 일병을 구하려고 애를 썼다. 노력이 엄청 들어간 오늘의 한 끼. 우리가 좋아하는 곳, 하동에 온 것 같았다. 그리운 하동, 구례 여행. 재첩 사랑. 재첩 럽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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