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7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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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금요일,
자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어제 먹은 취나물 된장찌개가 취나물이 아니라 곤드레였음을. 그 새벽에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잠이 든다. 어떻게 자다가 생각이 나는 걸까. 신기하고 웃기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 레몬청이 잘 숙성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별다른 변화를 못 느끼지만 맛있게 바뀌어 가고 있다고 믿었다. 새삼 전투적이었던 어제의 레몬 열정을 떠올려본다. 다시 생각해도 대단했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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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라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오늘만 회사 다녀오면 우리에겐 주말이 기다리고 있다며, 더 신나게 배웅을 했다. 안개에 가려진 시야가 신경 쓰여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도 덧붙인다. 좀 이따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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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무렵에 몸을 풀었다.
잔잔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쭉쭉쭉 스트레칭을 해본다. 비가 오면 삭신이 쑤시는 몸이라 내 몸에게 안녕을 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감자 택배가 잘 도착했다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알이 크고 양이 많아서 놀랜 엄마랑 미주알고주알. 부지런히 감자 요리를 하자고 했다. 엄마가 알고 있는 감자 레시피도 전수받았다. 감자볶음, 감자조림, 감자전, 감자옹심이, 감자밥 등등. 좋았어 감잡았어 감자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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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보다 말고 낮잠에 빠졌다.
어느덧 저녁시간이다. 메뉴는 된장찌개와 감자채 볶음, 잡채랑 양배추 샐러드. 감자가 어찌나 큰지 두 개로 만든 감자채 볶음은 몇 끼를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채 썰고 뜨거운 물에 데쳐서 기름에 야채랑 재빠르게 볶아내면 끝.(데쳐서 볶으면 감자가 덜 깨진다) 취나물 아니 곤드레 된장찌개가 맛있다는 남편. 밥 위에 오징어 젓갈을 올리고 김에 싸 먹으면 맛있다는 이숭이. 밥 먹으면서 세상 이야기, 경제 이야기, 각자의 하루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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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야 할 게 생겼다.
우유랑 달걀, 당근, 슬라이스햄을 사러 집 앞 마트로 갔다. 딸기도 담고 방울토마토도 샀다. 상큼한 게 먹고 싶어서 모히또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보인다. 벚꽃 팝콘이 팡팡 터질 때 비가 내리는 요상한 날씨. 그럼에도 송이송이 예쁜 벚꽃을 보며 눈으로 담고 사진으로도 남긴다. 일 년 전에 우리는 교토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통영 봉숫골 길을 걸었었는데.. 일 년이 지난 지금 마스크를 끼고 있고, 꽃구경은커녕 외출조차 못하는 상황이 됐다. 소중하고 고마웠던 지난봄, 소중하고 고마울 다가올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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