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6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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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목요일,
어젯밤부터 갑자기 왼쪽 귀가 아프다.
감기 증상이라고 하기에는 한쪽만 아파서 그냥 넘겨 버린다. 왼쪽으로 누워서 자는 걸 좋아하니까 귀가 아프겠거니 하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프고 살짝만 닿아도 욱신거린다. 자다 말고 새벽 5시에 검색을 할 정도였으니.. 주관적인 결론은 외이도염인 것 같다. 생각나는 건 손으로 귀를 팠던 것 밖에 없으니, 세균 감염인가? 턱도 아프고 머리도 아픈 귀 통증. 얼른 사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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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처음 사 본 레몬.
결혼을 한 이후에 처음 사 보고, 처음 해보는 일들이 많다. 이를테면 밥을 짓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것들. 갑자기 레몬청을 만들고 싶어 졌다.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검색해보고 정보를 머릿속에 새긴다. 열탕 소독부터 레몬 손질 모두 다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선물 받은 것도, 사 먹었던 것도 모두 정성이 들어가 있음을 몸소 체험했다.
뜨거운 물로 씻고, 굵은소금으로 박박 문지르고, 베이킹소다에 담그고, 식초로 씻어내기를 반복. 반짝반짝해진 레몬을 보며 싱긋 웃고, 최대한 얇게 썰어놓은 걸 보고 뿌듯해했다. 칼에 살짝 베이기도 했지만, 씨를 빼는 일도 재미있다. 유리병에 들어간 레몬청은 실온에 숙성하는 일만 남았다. 짝짝짝. 나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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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없고 삶아둔 달걀도 없다.
남편한테 하나만 주기로 했던 달걀은 깜빡하고 두 개를 챙겨줬다. 내 거였는데 히히. 밥을 안치고 달걀을 두 개 삶는다. 어제 남은 카레를 데워서 부추를 올렸는데 봄이 온 것 같았다. 혼자서도 잘 챙겨 먹는 한 끼 식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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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한 박스를 통영으로 부치고 왔다.
곧 침대에 녹아내렸다.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이 몸이 무겁다. 일어나서 저녁을 차려야지. 머릿속에는 메뉴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냉이 된장국을 끓여볼까 해서 육수를 내고 재료를 다듬었다. 냉동실에 있던 냉이를 탈탈 털어 넣었는데 뭔가 이상하다. 냉이가 아닌 것 같다. 자세히 보니까 취나물이다. 냉이가 아니라 아쉬웠지만 취나물 된장찌개도 의외로 맛이 괜찮다. 그리고 부추무침과 양배추 샐러드, 오징어젓갈과 찐만두. 고추냉이 소스와 초간장을 번갈아 찍는 만두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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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이후의 시간은 그냥 흘러갔다.
밥을 먹고 나면 남편은 소파에 달라붙는다. 그 자세가 너무 편해 보여서 ‘동네 백수’ 또는 ‘동백’이라고 부르고 있다. 각자 폰을 가지고 놀다가 재미있는 영상, 귀여운 동물이 나오면 서로 보여주고 요즘 세상 이야기에 진지해지기도 하는 우리. 함께여서 보통날도 괜찮다고,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평범한 날도 좋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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