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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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일요일,
남편 생일이 끝나기도 전에, 하루가 지나가기도 전에, 그것도 토요일 밤에 일찍 눕는 우리는 굉장히 피곤했나 보다. 마지막으로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를 나누고는 쿨쿨쿨. 새벽 3시 35분에 깨서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무는 툭툭툭 혼자 놀고 있다. 남편은 배를 쓰다듬으면서 나무의 움직임을 느끼고 이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평화로운 시간, 다시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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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과 과일로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도 시리얼 한 사발, 밀감이랑 포도를 먹으면서 여름방학을 보는 시간. 아침 밤으로 선선해진 날씨에 괜히 ‘여름방학’이 한뼘 멀어진 느낌이랄까. 선풍기 바람도 시원해진 대구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계절을 타는 나는 마냥 좋지만은 않은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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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모네모 로직 책을 펼친다.
남편은 신문지를 깔고 목공도구를 펼친다. 어제 온 따끈따끈한 우드카빙 도구로 자투리 나무를 슥슥슥 갈아본다. 궁금해서 1분 체험을 해보는 나. 칼날이 날카로워서 적은 힘으로도 깎을 수 있었다. 그러고 다시 로직 홀릭. 낮에도 오후에도 슥슥슥 삭삭삭 샥샥샥 목공 bgm이 깔리는 우리 집. ‘방망이 깎던 노인‘ 수필이 생각나는 건 왜 일까. 여기 방망이 깎는 남편이 있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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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끝나지 않았다.
팥밥과 미역국을 데우고 반찬들을 꺼냈다. 내가 끓이고도 맛있었던 미역국. 내일 또 끓여야지 흐흐흐. 든든하게 먹고 우리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다. 그러다 방에 누워서 놀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나는 맥심라떼, 남편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케이크도 먹고 계속 무언가를 먹는데 이제는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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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바깥 음식에 흔들린다.
하늘에서 똑 떨어진 통닭 쿠폰. 오늘은 bbq 황금올리브 반반. 바삭바삭한 튀김옷이 마음에 들어 asmr을 하듯 엄청난 소리를 내며 먹는다. ‘응답하라 1994’ 20화를 보고, 다시 늘어지는 밤. 오늘은 9월 6일. 부디 내일 태풍이 조용히 지나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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