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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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목요일,
남편 손을 가져와 배 위에 올려둔다.
우리 만의 방식으로 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은 좀 부끄러운지 아빠 목소리를 들으면 움직이다가도 조용해진다. 그 상황이 웃겨서 깔깔깔. 포기하지 않는 아빠는 몇 마디 말을 더 건넨다. 작곡가가 되어 개사를 해서 부르는 ‘알럽 나무송’도 함께. 11시에 불을 끄고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단순히 사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부터 시작해서 우리집 가계 상황, 미래의 우리 모습 등등. 남편은 이 시간이 뭔가 정리도 되고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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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를 하는 꿈을 꾸고 있을 때 남편이 깼다.
빗소리에 황급히 일어나 열어놓은 창문들을 다 닫고 온다. 그때가 2시 15분. 나무는 30분 가까이 활발하게 놀고 있었다. 실은 자면서 움직이는지, 깨어있는지 모른다. 흐흐. 예전엔 톡 톡만 했었는데 이제는 다양하게 건드린다. 팡팡 차기도 하고 툭툭 치거나 콕콕 눌러보는 것 같기도 한 느낌. 몸인지 손인지 몰라도 내 배를 스윽 밀어보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태동이 신기한 나는 나무랑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참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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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매트 위에 올라간다.
오늘도 잘 부탁한다며 나무에게 굽신굽신하는 나. 손목 발목 목과 다리를 충분히 풀어주고 동작을 따라했다. 유튜브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는 이 시간도 참 좋더라. 개운한 상태로 점심은 떡국. 굴로 육수를 내고 만두랑 떡을 넣어 보글보글 끓였다. 달걀을 풀고 파만 넣으면 끝. 한 끼 잘 챙겨먹었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해지는 날이다. 이숭이 시네마는 ‘어톤먼트’. 반전과 답답함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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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저녁이라니.
메뉴는 치즈돈까스. 한 주먹도 남지 않은 현미와 흰쌀, 기장을 넣고 밥을 안친다. 양배추 샐러드도 준비해놓고 기름에 튀기는 건 남편의 몫. 오자마자 바로 굽굽굽 구워주는 나의 요리사. 부먹과 찍먹을 동시에 실행하는 우리는 ‘응답하라 1994’ 마지막화를 드디어 봤다. 우리도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꽤 겪은 세대라 꽤 공감하면서 봤던 드라마. 지금은 발가락 까딱이며 일기를 쓰고, 남편은 드로잉에 빠져있다. 매일 오늘처럼 평범하게, 이렇게만 보내면 참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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