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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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토요일,
알람이 울린다.
후다닥 씻고 나가는 그에게 챙겨준 유부초밥 4개.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러 고고고.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살짝 눈을 붙였다. 비가 내리고 있어 늦잠자기 딱 좋은 날인데, 아쉽게도 남편이 없다. 말끔하게 씻고 나와서 개운한 상태로 시리얼을 먹는다. 나무야 아빠 언제 올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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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있는데 집으로 간다며 연락이 왔다.
띠리링 현관문 소리에 귀가 쫑긋, 숨어있던 꼬리가 튀어 나왔다. 흔들흔들흔들 세상 신나게 반겨주고 고생했다며 토닥여준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두 개의 비닐봉지. 하나는 어머님표 추어탕, 하나는 동네빵집과 커피였다. 오예. 일단 밥을 안치고 추어탕과 달걀말이로 점심을 먹었다. 토요일에 잘 챙겨먹는 건 좀 드문 편인데. 맛있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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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헬프’를 틀었다.
재미로 보기에는 씁쓸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던 영화. 생각할 거리도 많고 예나 지금이나 인종차별이 남아있어 묵직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린북도 조만간 또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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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지게 누워 있다가 각자 뭔가를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네모 로직을, 남편은 우드카빙을. 연습용 나무에 숟가락 모양을 본떠서 칼로 슥슥슥 긁어낸다. 슥슥슥 샥샥샥. 분위기 좋은 노동요와 함께 반복된 소리가 깔린 우리집이었다. 늦은 저녁으로 햄버거를 시키고 영화 ‘샘’을 본다. 안면인식장애라는 독특한 소재로 풀어나가지만 다소 불친절한 영화. 우리는 설명 잘 해주는, 이해하기 쉬운 걸 좋아하는데. 그나저나 남편은 햄버거 두 개를 먹었고, 나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엄청나게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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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울적해진 밤.
거울을 보다가 발견한 튼살같은 모양에 풀이 팍 죽었다. 바른다고 열심히 발랐던 크림이었는데 내 살성은 어쩔 수 없나보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가려움도, 불편해진 속과 뜨거운 목, 늘어나는 기미, 넓어지는 착색 부위도 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튼살이라니. 흑흑. 크림을 더 열심히 발라볼게. 그럼에도 자리가 잡는다면 나무가 주는 영광의 흔적이라고 생각할게. 우리 건강하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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