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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0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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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화요일,
남편 문자를 읽지도, 전화를 받지도 못하고 잠이 들었다. 12시가 되기도 전에 쿨쿨쿨. 혼자서 침대를 차지한 게 편했나 보다. 무엇보다 불을 끄고 누워있었으니 잠이 올 수밖에. 새벽 3시에 확인을 하고는 나무의 톡톡을 느끼며 다시 자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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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는데 남편이 벌써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몽사몽으로 문자를 보내고, 잠결에 통화를 했다. 그러고는 다시 쿨쿨쿨. 잠시 후에 엄마가 내 방에 오셔서 침대에 같이 누웠다. 한 두시간 떠들다가 거실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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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오면 자주 먹게 되는 것들.
과일, 고구마, 나물이나 채소들, 다양한 건강식단들. 아침은 간단히 과일이랑 고구마를 먹는다. 호박고구마랑 꿀고구마 두 가지를 냠냠냠. 쇼파에 반쯤 기대어 앉아있는데 나무가 폭풍 움직임을 보인다. 어제는 피곤했는지, 엄마의 손길이 낯설었는지 조용하더니 오늘은 시원하게 쿵쿵쾅쾅거리며 놀고 있다. 엄마의 따스한 손바닥이 내 배 위에 올려져 있을 때면 뭔가 모를 몽글몽글한 감정이 느껴졌다. 나무야 외할머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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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일과도 먹는 거 아니면 엄마랑 놀기.

삶은 달걀이랑 과자도 먹으면서 천하태평 친정라이프를 보내고 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머위가 왔다며 엄마는 곧바로 냄비에 물을 넣고 삶으신다. 둘이서 할 일이 생겼다. 머위 줄기 껍질을 벗기고, 쪼글쪼글한 잎들을 한장 한장 펼쳐서 그릇에 담는다. 딱 보니 오늘 저녁 메뉴는 머위쌈이구만. 집밥은 또 왜 이리 맛있는 거야.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뻥튀기까지 먹고 손을 탈탈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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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엄마랑 아파트 주변을 걸었다.
조금만 걸어도 배가 뭉치고 있어 보폭도 좁게 천천히 발을 뗀다. 한 시간 돌아다닐랬는데 30분 정도 밖에 못 채웠다. 나랑 산책할 때면 엄마는 동네 고양이를 궁금해하시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야옹 야옹’하고 불렀더니 어디선가 모이는 고양이들. 4마리가 우리 곁에 있지만 적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중에 얼룩이처럼 보이는 애는 발라당하려고 하던데. 그 귀여운 얼룩이가 맞네. 몸집이 왜 이렇게 작아진 거니. 그래도 귀여운 건 여전한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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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선은 내방-거실-아빠(오빠)방-큰방-내방. 뜨뜻하게 데운 돌침대에 엄마랑 나랑 아빠랑 셋이서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tv를 켜놓고 주무시길래 살금살금 나와서 큰방 침대에 또 누워 있는다. 엄마는 나 따라 방에 오시더니 다시 쿨쿨쿨. 드디어 내 방에 와서 일기를 쓰고 고구마 두 개를 집어 들었다. 허기질 때 먹으면 더 맛있는 고구마. 고구마 사랑 나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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