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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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화요일,
침대가 제일 편한 잠자리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여기도 불편한 곳이 되었다. 어젯밤엔 허리랑 등이 어찌나 아픈지.. 그렇다고 앉아있지도, 서있지도 못 하는 불편함의 연속. 30주부터는 몸이 급속도로 무거워짐을 느낀다. 잠이 많은 나를 깨우는 ‘임신’이라는 경험. 45일 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루하루를 평화롭게 잘 보내는 것. 시간 참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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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빼고 바빴던 아침이었다.
아빠랑 오빠는 부산을 갔고 남편은 출근했다. 엄마는 깨죽 한 솥을 끓이시고는 운동을 하러 가셨고, 마트에 다녀온다고 하셨다. 잡채를 만들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불타오른다. 나는 거실 아니 집을 차지하고는 리모컨을 잡았다. 일찍 일어나니까 배도 자주 고픈 것 같아 깨죽이랑 가래떡, 꼬북칩 초코맛을 먹으며 잔잔한 오전을 보낸다. 나무는 어디에서 신이 났는지 꿀렁꿀렁. 이제 정말 배가 크게 움직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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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 가득 장을 봐 오신 엄마.
옆에 딱 달라 붙어 잡채 만들기에 동참했다. 맛살을 먹기 좋게, 적당하게 뜯었다. ‘적당히’가 어느 정도일까. 아무튼 손질을 끝내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달 볶는다. 왕손이 엄마의 칼이 쉴 새 없이 뚝딱거리더니 어느새 잡채가 한 대야 가득 쌓였다. 60인분이라니. 누가 보면 우리 집 잔치하는 줄 알겠지만, 엄마, 오빠, 나 세 집이 나눠 먹을 양이라는 거. 그냥 엄마 손이 크다는 거. 응답하라 드라마에서 보던 우~ 대형잡채!가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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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온 아빠랑 오빠는 오후 3시에 점심을 먹었다. 우리도 옆에서 잡채랑 죽을 먹고 빵을 먹었는데, 잠깐 숨을 돌리고 금방 저녁 시간이 됐다. 6시에 저녁 밥이라니. 고등어구이랑 쌈채소, 어김없이 등장하는 잡채와 반찬들, 후식은 밀감이랑 던킨 도너츠. 진짜 제대로 사육당하는 것 같은 친정 라이프였다. 나무야 골고루 잘 먹고 잘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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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한 남편이 김밥을 부쳐먹고 있을 때 우리는 판을 벌인다. 고스톱과 뽕게임 현장. 며칠 전에 5만원을 잃고 다시 돌려 받았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패를 잡았다. 꽤 많이 벌었는데 점점 잃어가는 판돈들. 만 천원을 땄지만 오늘도 그냥 돌려주고 게임은 끝이 났다. 돈 벌기 힘들다 힘들어. 멀리서 내게 응원을 보내던 남편은 황금시간에 이불 털기, 수건 빨래, 선풍기 고치기, 영화를 보면서 즐기고 있었다. 며칠 더 즐기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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