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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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일요일,
굿나잇 인사를 나누고 잠이 든다.
혼자서 쓰던 침대는 갑자기 반으로 쪼개어졌다. (물론 내가 더 많이 차지했지만)그것 빼고는 괜찮았던 밤. 옆에 남편이 있는 것도 신기하고, 나무가 새벽 아무때나 그저 시도때도 없이 움직이는 것도 놀랍다. 서로의 온기가 느껴지던 11월 첫 날, 우리는 그렇게 또 새로운 달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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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쯤 일어나 어제 남은 빵들을 집어 먹었다.
남편도 일어나자마자 땅콩빵을 입으로 쇽 넣었고, 과일도 몇 개 깎아먹는다. 대구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만찬은 엄마표 집밥으로 장식했다. 생일인 듯 찰밥과 미역국이 나왔고, 엄마의 대형잡채와 친한 이모가 나 먹으라고 주신 갈치도 출동했다. 2주동안 설거지 딱 한 번하고, 밥 한 번 안차렸던 편한 백성놀이 친정 라이프는 오늘로 끝.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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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돌아가는 길은 비슷하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눈치없는 딸이 되기도 하지만, 헤어짐은 아쉽고, 눈물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아빠가 여려지신 것 같아 몇 번은 더 꼬옥 안아드리는데 오늘도 눈물이 핑 돌았다. 남은 기간동안 몸 건강히 잘 지내라는 말도 애틋해지네. 엄마는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쌀이며 과자, 우유, 양파, 다진 마늘, 떡, 반찬과 찰밥, 깨죽 등 아낌없이 챙겨주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감사하게, 맛있게 먹는 것. 감사해요. 우리는 곧 겨울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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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카페 밈에 들렀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혼자서 속으로 되게 감동받았다. 나무를 위해, 정성껏 로스팅하신 그 마음이 감사해서 커피 맛있게 잘 먹어야지. 바닐라라떼를 쫍쫍 마시면서 대구로 출-발. 콧노래를 사서 집으로 갑시다. 3시간 정도 걸렸던 여정에 지칠대로 지쳤지만, 정돈된 우리집을 마주했더니 다시 에너지가 살아난다. 그동안 주부놀이를 한다고 고생했던 여보 땡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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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초를 찾느라 온 집을 뒤졌다.
겨우 찾고는 레몬케이크에 불을 붙인다. 둘이서 마주보며 오늘을 기념해야지. 11월 첫 날, 우리가 결혼한 지 1100일 째, 나무 만나기 40일 전. 소소하고 평범한 것도 특별해지는 우리만의 기념일. 축하해요. 고마워요. 11월도 지금처럼 많이 웃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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