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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6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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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금요일,
자기 전에 테이블 앞에 앉아서 적는 일기는 습관이 된 것 같아도, 가끔은 귀찮을 때가 있다. 하루 빼먹고 싶은 그런 날. 그럴 땐 짧게 써야지. 홍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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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보일러를 살짝 틀었는데도 새벽엔 약간 추웠다. 가습기가 필요한 계절이 왔는지 임신 중에 코는 더 자주 막히기 시작했고 숨 쉬는 게 힘들어졌다. 뭘 하지 않아도 숨이 찰 때가 있고, 말하다가도 헥헥 거리기도 한다. 매일 목은 뜨겁고 자다가도 몸을 긁는다. 일어나거나 앉을 때 ‘아고고’ 소리를 내고 뼈가 후두둑 고장난 것 같다. 튼살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고 번져나간다. 그럼에도 나무는 가장 안전한 곳에서 퉁탕퉁탕 놀고 있는 모습에 위안을 삼는다. 남편의 다정한 마음과 관심 덕분에 미래의 무서움도 나름대로 잘 다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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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통면 하나를 끓였다.
달걀 하나를 넣고 호로록. 국물이랑 떠먹는 찰밥에 금세 배가 불렀다. 후식은 초코우유랑 영화 ‘청춘 스케치’. 비포 선라이즈를 생각나게 하는 젊은 에단호크를 만날 수 있어 반가웠던 시간이었다. 낮잠을 자고 남편 퇴근 연락과 함께 통닭이랑 피자를 시킨다. 귀찮아서 건너 뛸까 했던 산책을 잠시라도 하려고 아파트 주변을 걸었다. 어둠 속에서 만난 우리는 같이 집으로 들어왔다. 반갑구먼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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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잔치라도 한 것처럼 우리 앞에 음식이 차려졌다.
사이다를 몇 잔이나 마신 걸까. 피자 통닭을 먹고 나서 배가 빵 터질 뻔 했다. 요즘 핫!하다던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보면서 출산과 육아세계에 선행학습을 떠난다. 나도 모르게 찡-해지는 부분도 있고, 나무를 만나는 과정이 부디 덜 험난했으면 하는 바람만 가득. 겨울나무야 우리 건강하게 만나자. 35주 시작을 축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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