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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5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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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목요일,
같이 있어서 좋은 점은 일찍 눕는다는 거.
내가 통영에 2주 내려가 있는 사이에 남편은 집안일에 자유시간까지 즐기느라 자러가는 시간이 늦었다. 뒷날 아침에 피곤하다고 골골골. 내가 있을 땐 11시면 눕는 습관 덕분에 덜 피곤하지만, 귀엽고 성가신 존재의 존재에 피곤한 것 같기도. 캬캬캬. 장단점이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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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반.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누웠는데 그때부터 잠들지 못하는 나. 어느 자세 하나도 편하지 않아서 계속 움직여본다. 왼쪽, 정면, 오른쪽, 다리나 허리에 베개를 받치기도 하고, 잘 자고 있는 남편 등짝에 붙어서 얼굴을 파묻어본다. 이번에는 코가 막혀서 헥헥. 나무 태동이라도 자주 느껴지면 덜 외로운 새벽이었을 텐데.. 4시, 5시, 6시.. 결국 일어날 시간이 됐다. 벌써 아침이라니.. 퀭하디 퀭한 이숭이는 오늘 피곤해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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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간식을 챙겨주고 배웅을 했다.
아침 일찍 카시트가 핫딜이라며 친구가 연락을 했다. 이미 비싸게 주고 샀는 걸.. 달달한 쾌변두유 하나를 비우고 다시 누웠다. 윗집에서 쿵쿵 소리가 나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베란다에 나가봤더니 아랫집에서 이삿짐을 옮기고 있었다. 상황을 이해 못 하는건 아니지만 너무 쿵쿵거리는 이삿짐센터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소음도 피곤을 이기지 못 하나보다. 어느새 곯아떨어진 나는 개운하게 잘 자고 일어났다. 나무도 잘 잤는지 내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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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죽을 데워 먹고 컴퓨터를 켰다.
영화 한 편을 볼까 하다가 그냥 인터넷 사이트만 돌아다녔다. 산책이라도 하고 오라는 남편의 말을 최대한 모른 척 하다가 집을 나섰다. 아파트 주변만 계속 걸었다. 나무에게 가을 나무를 보여주면서 뚜벅뚜벅. 그렇게 30분을 걷다가 들어왔다. 매일 매일 산책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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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메뉴는 찰밥, 소불고기, 순두부찌개.
찌개 재료가 남아서 한 번 더 끓여 먹기로 했다. 한 번 경험해봤다고 물 조절과 재료 양도 성공. 불고기는 핏물을 제거하고 다진 마늘과 액젓, 후추로 간을 해서 잠시 재워뒀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서 양파랑 당근을 넣고 굽고 찌개를 끓인다. 오자마자 ‘피자가 먹고 싶었는데 참았다’고 말하는 그가 어찌나 귀여운지. 오늘도 우리는 든든하게, 맛있게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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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주 끝자락 사진을 남겨둔다.
원래 달라 붙던 옷인데 이제는 빵!하고 터질 것만 같다. 임산부들이 왜 배를 받치는지 궁금했는데 툭 튀어 나온 배가 무거워서 손이 저절로 간다. 손바닥 가득 올려지는 배를 보며 나무가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아빠랑 밀당을 하듯 신호를 주고받는 모습도 귀여운 지금 이 순간. 나무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오늘도 아가 이름을 마음껏 불러본다. 우리가 엄마 아빠, 부모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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