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4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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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목요일,

어둠 속에서 일기를 다 쓰고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까무룩 잠들어 버렸다. 결국 4시 넘어서 올린다. 나무는 자다 깨서 맘마를 달라고 서럽게 울더니 어느 정도 먹고 나서야 진정이 됐다. 아유 동네 사람들 다 깨겠다.. 가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면 그리 귀엽고 가소롭고 그렇더라. 그만큼 엄청 배고파서 힘들었다는 거겠지. 늘 그렇듯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이불을 살포시 덮어주었다. 잘자 귀염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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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을 나서는 남편을 보지 못 했다.

나무 맘마를 먹이는 동안 주고 받는 문자들. 회사에 잘 도착했다고, 오늘도 고맙다는 말로 서로에게 감정을 표현한다. 우리 아기는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맘마를 먹다가 그대로 다시 꿈나라로 떠났다. 1시 반에 잤으니 지금은 꼭두새벽일 테니 깨우지 않겠어. 11시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똥파티 흔적들을 치운다. 어쩐지 아까 자면서 방구를 뽕뽕뽕 뀌더라니.. 속을 비웠으니 맘마 먹을까? 소고기완두콩미음 1일 차. 다행히 잘 먹는다. 내가 한 번 맛을 봤을 때 완두콩 맛이 많이 느껴졌는데, 괜찮은지 꿀떡꿀떡 잘 삼켰다. 물론 분유를 달라고 버럭하고 울긴 했지만, 이유식 90ml과 분유 120ml을 먹었네. 미음을 제일 많이 먹은 날이다. 열심히 만든 보람을 여기서 보상 받는다 뿜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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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랑 열탕소독을 끝내고 밥 한 술 뜨니까 오후 2시가 다 됐네. 나무는 찡찡거리다 금세 잠들었다. 한 20분 잤나.. 다시 온 힘을 쏟으며 노는 나무. ‘안 돼’라는 부정적인 말을 쓰고싶지 않은데 나무가 하는 것들은 왜 온통 안 되는 것들일까.. 위험해서 안 되고, 더러워서 안 되고 아이참. 눈치를 보면서 살짝 살짝 움직이는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터진다. 진지하게 말 해야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 땀도 흘렸겠다 목욕을 시키려고 준비하는 순간,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오메, 또 똥파티여? 다행히 씻기 전에 발견했으니까 마음이 편했다. 욕조에서 첨벙첨벙 찹찹찹 물놀이를 좋아하는 나무가 참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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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많이 재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어디로 갔는지..

우리는 2시간을 내리 잤다. 폰을 만지고 놀면서 계속 떨어뜨리다가 결국은 아기를 안고 푹 잤네. 아빠가 왔을 때 둘 다 비몽사몽이었지. 근데 나무 머리는 왜 이래…? 왕관앵무의 시그니처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쑥대머리가 되어있었다. 6개월 사이에 머리카락도 많이 자라서 고무줄로 묶인다. 새삼 느끼지만.. 아들이라서 다행이다. 머리 하나 제대로 묶지 못 하는 이숭이라 이 부분만큼은 편하게 키울 수 있네? 아기자기함 대신에 체력이 많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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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요리는 김치볶음밥.

쉽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발견했다며 김치볶음밥을 제안했다. 스팸과 김치, 치즈 가득한 밥. 버터향이 솔솔솔 맛있게도 먹었다. 배도 부르고 ‘좀 이따 스텝퍼 걸어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바람이 선선해서 산책을 가자고 했다.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챙겨서 나온 우리 셋. 유모차만 타면 시무룩한 나무는 오늘따라 두리번거리며 잘 있었다. 잘 것 같으면 마구마구 깨웠더랬지. 동네를 걷는 동안 커다란 달은 우리 곁을 지켜주었다. 마트에 가서 우유랑 과자, 자두 한 팩을 사 들고 컴백홈. 12시 전에 잤으면 했던 나무는 11시 반에 자러 갔다! 아싸. 그 전까지 아빠 품에서 귀여운 소리 신기한 소리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웃음을 주던 밤. 오늘도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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