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1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_

_

7월 11일 일요일,

나무는 할아버지 품에서 잘 잤다고 했다.

더우면 창문을 열고, 추우면 이불을 덮어주며 온도조절을 하셨다며 으쓱한 우리 아빠. 깨지 않고 잘 잔 나무 덕분에 아빠도 뿌듯하신가 보다. 엄마의 하루 5시가 되기 전에 맘마를 먹이고 잠든 나무는 아침 8시까지 계속 잤다. 바통 터치를 하듯 엄마 아빠는 산에 가시고, 나는 8시 반에 일어나서 그때부터 나무를 돌보기 시작했다. 엄마의 품이 그리웠는지는 몰라도 나는 너무 그리웠어. 보고싶었어. 어쩜 좋아. 이건 그저 사랑일까.

.

두근두근 이유식 타임.

매번 어떤 기분과 어떤 표정으로 먹을지 궁금한 나는 이 순간이 기대되면서도, 부디 잔잔히 잘 흘러가기를 바랐다. 어제부터 유난히 찡긋 표정을 짓던 나무는 한입을 먹고 나면 찡긋찡긋. 맛있어서 그래? 새로운 개인기가 생긴 것 같아 무장해제되는 나의 입과 물개박수. 너무 너무 귀엽단 말이야. 하지만 분유가 먹고 싶은지 찡찡찡 표정이 금세 바뀌었다. 어, 그분이 온다온다.. 결국 눈물 콧물을 쏙 빼놓고, 타 온 분유는 외롭게 방바닥에 굴러다니네. 낮잠을 주무시던 할머니 할아버지 다 깨워서 우리 셋은 아기를 달래기 바빴다. 이미 땀으로 젖어 끈적끈적한 몸은 이미 한도 초과. 그나마 다행인 건 조금씩 달래지면서 맘마를 다 먹었다는 거. 이유식 75ml, 분유 170ml 짝짝짝.

.

자는 순간 빼고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우리 나무.

보행기를 타면서 겅중겅중 걷고, 앉기 연습과 잡고 일어서기 연습은 쭈욱 ing, 배를 밀고 다니며 장난감이랑 선풍기 만지기 등등. 나도 너무 더운데 너도 너무 덥다야. 엄마는 나를 보며 머리를 묶으라고 제발 수면양말 좀 벗으라고, 짧은 바지를 입으라고 하셨다. 아하? 더운 이유가 있었구만.. 남편은 블랙 컨셉으로 자전거를 타고 커피를 사러 갔다오는 동안, 우리 둘은 늘어지도록 낮잠을 잤다. 1시간만 자도 체력이 다 충천되나 봐! 너의 체력이 참 부럽다.

.

엄마의 건강밥상, 호박잎과 찐 깻잎, 상추로 쌈을 싸 먹는다.

좋아하는 빨간 자두를 먹고 있으면 성큼성큼 다가오는 나무는 자두 맛을 알아버린 것 같다. 후다닥 저녁을 먹고 맘마를 먹이다 충격에 빠졌다. 그냥 입술을 들어올려 봤는데 윗니가 뿅! 난 게 아닌가.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나.. 며칠 전에 윗니 4개가 하얗게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금방 올라올 줄 몰랐네. 안 그래도 감기때문에 코찔찔이에 콜록콜록하는데, 이앓이까지 하다니.. 우리 아기 너무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또 아프네. 미처 발견하지 못 한 엄마는 뒤늦게 또 반성하고 꼬옥 안아준다. 그래도 그저께는 입을 꾹 다문 채 기분이 너무 안 좋아보이더니, 어제는 조금씩 웃고 소리를 내더라. 그리고 오늘은 잘 웃고 신난 소리를 내니까 꽤 안심이 되는 것 같기도. 아유 아유. 내일은 더 괜찮아질 거야.

.

물에 빠진 생쥐가 된 나무를 안 씻길 수가 없었다.

욕조에 물을 받고 의자에 앉혀서 씻기는데 어찌나 탈출을 하던지.. 어우, 몇 번을 붙잡았는지.. 살이 접힌 곳마다 먼지가 있네. 엄마도 어릴 적 나를 벅벅 씻기실 때 희열을 느끼셨을까. 나는 속이 다 시원하구만. 기저귀 채우기까지 힘을 쏘옥 빼놓으니까 제대로 녹초가 됐다. 그 다음은 빨래 널고, 젖병 씻고 자전거 30분타고 윗몸 일으키기 30개씩 2세트로 몸을 움직인다. 뽀송뽀송 씻은 나 너무 기분 좋아. 이대로 잠들면 너무 행복하겠지.

_

작가의 이전글20210710 이숭이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