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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숭이 Aug 06. 2021

20210725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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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일요일,

우애앵 소리에 달려온 아빠.

새벽 4시였다. 잠깐 안아주실 때 후다닥 주방으로 가서 분유를 타 왔다. 6시간 공복에 먹는 거니까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자면서 먹고 바로 달콤한 꿈나라로 슝. 두 다리를 베개에 척! 올리고 자는 모습은 보는 나까지도 편해보였다. 잘 자. 오늘은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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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꾸러기 두 명은 느지막이 자고 일어났다.

11시까지도 이불 밖을 벗어나지 않는 우리. 밖에 갔다가 오신 엄마의 현관문 소리에 귀를 번쩍이는 나무를 데리고 거실로 나갔다. 어느덧 맘마시간. 어제 만든 이유식을 데운다. 소고기표고버섯청경채죽은 알갱이가 있어서 잘 먹어줄지 궁금했다. 치즈를 이와 잇몸으로 씹었는데, 죽이랑 소고기도 씹고 있었다. 빨기만 할 줄 알던 아기가 씹고 삼킬 수 있다니. 매 순간 큰 성장이었고,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아기새는 잘 먹다가 하품을 하더니 졸리다고 찡찡찡. 눈물의 이유식이었지만 죽 150ml, 분유 100ml을 먹었다. 똥파티까지 잘 했어 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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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본가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엔 머리를 깎으러 간다고 했다. 그때 나는 밥을 먹고 빨래 널고, 젖병을 씻고 열탕소독과 청소기를 하면서 땀을 뻘뻘뻘. 보행기를 타고 나만 졸졸졸 따라다니단 나무를 재워야만 해.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금세 잠든 아기랑 같이 나란히 눕는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시원한 공간, 제일 편하게 신선놀음을 즐기는 우리였다. 낮잠시간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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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 엄마의 대형잡채놀이.

당면 50인분이면 말 다했지 뭐. 이 정도의 당면을 살 일이 없는 나는 그저 너무 신기했다. 돼지고기, 시금치, 양파, 게맛살, 어묵, 당근 손질에 박차를 가한다. 나는 어묵을 채썰고 게맛살을 손으로 쫙쫙 길게 찢었다. 몇 개 먹기도 했지롱. 아주 큰 통에 재료와 당면을 넣고 조물조물 섞는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지네. 엄마의 대형잡채는 우리의 저녁식탁에 아주 기세등등하게 올라와 있었다. 후루룩후루룩 당면치기를 끝내고 빵이랑 복숭아까지 야무지게 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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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유식 시간.

닭고기고구마브로콜리죽. 고구마가 들어가서 코끝에 고구마 향기가 가득하다. 삶은 것만 먹어본 나무는 죽을 과연 잘 먹을 것인가. 궁금궁금. 단 맛이 입에 퍼져서 그런지 맛있게도 먹는다. 내가 봤던 모습 중에 입을 제일 크게 벌리는 것 같았다. 음~ 음~하고 소리를 내며 맛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네.  그렇게 150ml을 깨끗이 비우고 분유 90ml도 다 먹었다. 이제 총 240~250ml도 거뜬한 나무였다. 다같이 놀고 간식으로 치즈 반장까지 먹는다. 오물오물 씹고 삼키는 모습이 왜 이렇게 사랑스럽니. 짭짤한 치즈맛을 알아버린 나무는 계속 입을 벌린다. 어제는 1,160ml 오늘은 1,020ml 그래 이 정도로 유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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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일요일밤.

나무는 이곳 저곳을 기어가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만지고 놀았다. 큰 베개를 잡고 일어서서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들을 잡으려고 낑낑. 그 중에서 엄마의 안경통을 너무나도 좋아하네. 졸음때문에 하품이 터지고 눈을 비빈다. 너무 이른 시간에 재우면 또 깰 것 같아 할머니는 최대한 늦게 재우려고 살방살방 돌아다니셨다. 할아버지한테 인수인계를 마치고 바통을 넘기시고는 주무시러 가신다. 너랑 나, 할아버지 세 사람의 조용한 시간. 자러가자 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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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오늘, 짐 한가득 싣고 서울로 갔던 날.

일러스트레이션페어 행사 준비에 영혼이 탈출할 뻔 했지만 4일동안 너무 너무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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