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_
_
7월 27일 화요일,
쉽게 잠들지 않는 나무.
안고 있어도 뒤척거린다면 내려놔도 그럴 거라며 불을 끄고 침대에 눕히기로 했다. 오늘도 내 몸은 나무의 놀이터가 되어주리라. 예상한대로 막막막 돌아다니고 나를 밟고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어느덧 시간이 흘러 옆으로 돌아 누워있는 걸 발견했다. 오! 자려나 봐! 드디어! 자는구나! 나의 속마음은 즐거운 느낌표가 되어서 모기장 텐트 지퍼를 닫고 몸을 돌린 순간, 나무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서 앉아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토끼인형을 들고 조용히 나를 보고 있었다. 오메 아무 소리도 안 나던데..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랄까. 놀람 반, 충격 반. 5초 뒤에 당황스러운 웃음을 터뜨린 나. 와, 언제 일어난 거야..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12시 35분에 자러간 나무였다.
.
4시 반, 10시에 맘마를 먹는다.
9시에 한 번 깨서 놀다가 맘마파워로 다시 잠이 들었다. 이 귀여운 껌딱지는 혼자 자다가도 내 품을 찾아온다. 내 왼쪽 팔을 야무지게 베고 누워서 쿨쿨쿨. 나도 나무쪽을 향해 누워서 쿨쿨쿨. 늦잠을 자고 있는데 할머니가 우리 둘이 그만 자라며 깨우라 오셨다. 하하하. 늦잠꾸러기들아 일어나라. 한 순간에 10년의 공든탑이 무너지는 얘기에 충격이었지. 말은 언제나 조심해야 하고 신중해야할 것.
.
두근두근 이유식 시간.
아니 난리난리였던 시간이었다. 오전부터 우리가 점심먹을 때까지 잘 놀았던 나무는 갑자기 너무 졸렸나 보다. 몇 숟갈을 채 뜨지도 않았는데 벌써 울음을 터뜨리면 어쩐단 말이냐. 나무는 입을 쩍 벌린 채 울고 초록색 죽이 외롭게 식어가고 있을 무렵, 할머니 할아버지 총출동! 우리 모두 조금이라도 먹이고 재워야겠다는 전투의지 활활. 각자 역할을 열심히도 해냈다. 나는 죽 먹이기, 할아버지는 나무를 안고 둥가둥가, 할머니는 장난감 흔들면서 달래기. 졸린 중에도 입은 계속 벌려서 140ml이나 먹었다. 그러고는 바로 잠들었다네. 남은 건 흘린 바닥닦고 치우기. 죽이 덕지덕지 묻은 할아버지와 나무의 옷이 우리가 얼마나 난리였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유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적당한 허기짐과 졸리지 않을 때 먹이는 이유식 타이밍은 언제일까.
.
어제 일기를 쓰면서 여유로운 오후를 보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유식이나 만들걸.. 나 뭐했냐.. 왜 벌써 만드는 날이냐.. 소고기 핏물 빼는 시간과 뭘 만들지 고민을 해야하니까 당장 만들 순 없으니 윗몸 일으키기나 해야 겠다. 어제 오늘은 100개 하고 30개 더. 이를 본 엄마는 내게, 평소엔 밤 늦게 하더니 오늘은 왜 이리 일찍 하냐며 저녁에 통닭먹으면 말짱 꽝이지 않냐며.. 흐흐흐. 어찌됐든 운동을 하고 닭고기죽 하나를 끓여놓고 통닭파티를 열었다. 호랑이치킨과 간장, 후라이드 냠냠냠. 호랑이 오랜만이야.
.
아, 오늘 이유식 한 번밖에 안 먹였구나?
완전히 까먹고 있다가 그릇 개수를 보고 알아차렸다. 후다닥 의자에 앉혀두고 죽을 데워왔다. 어제에 이어 잘 먹는 닭고기고구마브로콜리죽. 나무야 너도 단 맛에 빠졌구나? 나중에 엄마랑 달달한 거 많이 먹자! 죽을 먹고 곧바로 분유로 배를 채운다. 육류를 섭취하면서 딱딱한 똥을 누는 나무가 신경쓰여서 변비에 좋은 재료를 찾아본다. 닭고기 소고기와 좋은 궁합도 찾아보느라 눈이 빙글빙글. 있는 재료로 하려니까 청경채가 이번 이유식의 메인 모델이 되었네. 잘 부탁해.
.
설거지, 젖병씻고 열탕소독, 목욕시키고 재우기가 남았다.
그 다음엔 자전거 타기, 샤워, 일기쓰기만 하면 오늘 할 일 끝. 자전거 30분을 타는 동안 주무시던 할아버지가 나와서 나무를 안아주셨다. 잠은 오는 것 같은데 어째서 안 잘까, 아니 못 잘까. 그리고 어제 갑자기 매트에 핀 곰팡이 때문에 난리였던 남편은 넷플릭스에 청춘남녀 3:3 데이트 프로그램을 봤다고 했다. 꼬깔콘 매니아는 과자까지 야무지게 먹었네. 이제 며칠만 있으면 만난다! 우리가족 만난다! 그때까지 잘 노숑. 우리 귀여운 나무는 신나게 침대를 헤집고 돌아다니다가 11시 35분에 잠들었다고 한다. 오늘도 크느라 노느라 너무 잘했어, 잘 자.
_